-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방미 출국에 앞서 방송한 라디오 연설에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엔 대증(對症)요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민심은 여전히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저는 요즘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귀국해서도 의견을 계속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은 '근원적 처방'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과 이념으로 갈려 극한투쟁을 일삼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근원적 처방'이 여당과 정부, 청와대의 전면적 인적(人的) 쇄신일 수도 있다. 우리 정치풍토에선 '사람 바꾸기'가 정국의 분위기를 바꾸는 한 계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마다 위기에 처하면 늘 개각 등의 카드를 뽑아들었고, 그러다 또다시 위기와 개각을 거듭하는 악순환이 우리 정치사(史)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도 최근 이런 국면전환용 개각에 대해 "3김 시대 관행"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말한 근원적 처방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고질적 지역 대립은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지 오래고, 대선만 끝나면 '권력 독점측'과 '극단 저항측'이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지역 대립과 권력 집중을 해결하려면 개헌밖에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7월 17일 제헌절부터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원 중엔 대통령중심제의 폐해가 심각한 만큼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개헌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야 각 정파가 동의해야 하고,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경우 나라의 주요 현안은 제쳐놓은 채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는 부정적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개헌 논의보다 앞서야 할 것은 지금의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중심제는 나쁜 제도라고 할 수 없으며,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호남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얻고 당선됐다. 그러나 첫 인사에서 지역 편중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지역 대립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지금의 권력독점 문제도 대통령 바로 주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제도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을 생각하고 있다면 대통령과 정권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다음이라면 국민의 눈은 자연스레 극한적 반발을 일삼는 세력으로 옮겨갈 것이다.
<6월16일자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