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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박근혜는 ‘경상도의 DJ’인가. 솔직히 말해서 DJ라는 말은 반역적 친북좌익 정권과 투쟁하며 국가정체성 회복운동을 했던 필자로서는 듣기조차 싫고 말하기조차도 싫은 약자(略字)이자 이니셜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5월 20일자 조간신문에 최보식 선임기자의 ‘박근혜와 경상도의 DJ'라는 제하의 칼럼을 매우 의미 있게 읽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열정적 지지자들은 추오의 비판도 용납 않는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이 추세는 심화되고 있다’고 축약하여 표현한 최 기자의 글을 보고 발끈함 대신에 보약 같은 ‘쓴 소리’로 박 측이 잘 받아들인다면 명약(名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박근혜 관련 쓴소리글만 언론에 나오면, 박측 일부지지자들이 왜 그리도 난리난 듯 열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박근혜 의원에게 조금이라도 쓴 소리를 하는 글이 언론에 뜨면 으레 상상을 초월한 ‘악플’이 무척 많이 따라 붙는다. 악플 쓰는 자들의 그 야비하고 허위 사실에 가득 찬 내용에 이미 면역이 된 나는 아예, 박근혜 관련 쓴소리글을 쓸 때는 밑에 따라 붙는 악플을 보지 않기로 한지 오래고, 열안내기 시작한지도 이미 오래다. -더욱 심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까도 생각해 본 적도 있긴 했지만-
원칙주의자의 비원칙성이 나타나면 언론은 쓴소리를 하게 마련이다. 또 반정당주의의 행동을 하고 개인인기관리에만 신경쓴다는 인상을 주면 당연히 언론은 그러한 정치인을 향하여 ‘쓴소리’를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자파이익 관련 부분에서만 원칙이라고 내세우는 일방성은 국민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가 내세우는 것만이 원칙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사고에 대치되는 모순이고 독선이며 오만이다.
예컨대 혹자가 ‘홀로 사는 독신자들은 딸린 자식이 없어 부정부패 관련 소지가 전혀 없다’고 강변했다고 치자. 딸린 것은 직계지만 직계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연관 있는 주변인’들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농단한 자들을 살펴보면 권력 직계가 아니었고 오로지 얽히고설킨 가장 친한 주위의 인맥들이었기 때문이다. 원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언젠가 내가 박 의원 관련 쓴소리글을 모 인터넷 매체에 올렸더니 데스크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와 ‘양영태 글, 당장 내려 달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L모 의원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선일보 최 기자의 칼럼 ‘박근혜와 경상도 DJ’라는 글이 박 의원에게 쓴소리이자 명약 같은 훌륭한 글임을 박 의원과 그의 지지자들이 진정으로 알아차릴 때라야만 비로소 국민의 마음이 박 의원을 향해 달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음에 안드는 쓴소리글이 나왔다고, 재빨리 언론에 올리는 ‘대응 칼럼’류의 글은 박 의원을 향한 충성심의 표현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정현 의원의 ‘박근혜… 誤解와 五解’라는 글은 상당한 오해(誤解)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