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이 자기 ‘집에서(부인)’ 빚 갚으려고 박연차 씨에게 돈을 달라고 해 받아썼다고 시인했다. 이것을 두고 그의 일부 지지자들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직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웃기는 얘기다. 검찰 수사가 조여 오지 않았더라도 그가 과연 “네, 제 아내가 돈 받았습니다”라고 자복했을까? 진짜 정직하고 싶었으면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고백성사를 했어야지,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됐을 때 시인하는 것이야 노태우도 일찍이 그랬다. 노무현은 결국 노태우하고 동격이 된 셈이다. 신군부의 금전적 부도덕을 그토록 질타하던 그도 알고 보니 오십보 백보였다는 이야기다.

    근래 이른바 왕년의 '민주화 운동가'였던 위인들의 금전적 스캔들이 심심찮게 불거진 바 있다. 이모(李某), 또 다른 이모(李某), 엄지 손가락 자른 이모(李某), 김모(金某), 장모(張某)…이하 생략. 모두가 한 때 ‘민주투사’ ‘정의의 화신’인양 행세하던 친구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막판에 가서 인생을 결국 ‘검은 돈 먹은’ 부도덕한 자라는 모양새로 구겨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됐을 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했던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 전체의 명예를 실추 시키면서…. 그들은 사회과학이나 이념 문제에 깊이 빠져 사회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혹하리 만큼 엄격했으나, 막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위선적이라 할 만큼 관대했던 모양이다. 남의 눈의 가시만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았었나? 남이 하면 스캔들, 제가 하면 로맨스?

    노무현의 부인이 돈을 받은 것이 그 남편의 재임기간이었나 아니었나? 만약 재임중이었다면 그건 정말 중대한 범죄이자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부도덕이다. 청와대에 들어앉아 범법을 했다는 것은 일반 시민의 신분으로 한 것의 5만 배는 더 고약하기 때문이다. 또 노무현이 자기 부인의 범법 행위를 안 시점은 언제인가? 대통령 재임 중에 알았는가, 퇴임 후에 알았는가? 아니면 재임중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가? 이것 역시 노무현에 대한 판단의 경중을 가늠하는 데 엄청 중요한 사항이다.

    원래가 ‘도덕군자’임을 자처하지 않은 사람의 부도덕하고, “나는 정의 진리 도덕성을 대표한다”고 떠벌린 자의 부도덕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뭘…”하고 지나치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게 고상한 체 하더니 정말 위선자구먼…”하고, 격렬한 경멸을 토하게 만든다.

    이른바 ‘좌파’가 자임하던 도덕적 비교우위는 완전히 끝장났다. 성폭행을 감싸고 돈 민노총의 ‘말로(末路)의 시작’처럼. 그들의 이념, 이론은 90년대 초 소련권이 붕했을 때, 그리고 김정일의 ‘굶주림의 왕국’ ‘수용소 군도’가 알려졌을 때 이미 일찌감치 끝장났다. 이제는 그들이 매달리고 있던 최후의 자산-‘왕년의 도덕적 비교우위론’까지도 송두리 째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이 매장당하는 오늘,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들려줄까, 모차르트의 그것을 들려줄까? 아니면 그냥 노무현․권양숙이 좋아할 ‘산 자여 따르라(이제는 ’죽은 나를 따르라‘)’나 불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