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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

    그녀는 정상에 올랐다. 아름다움의 절정이 이룬 절정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옛날, 한국인이 몸으로 때우는 다른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수영, 피겨 스케이팅 같은 것들은 서양 사람들의 독무대였지,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에델바이스의 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숙녀 김연아가 2009년 3월 29일, 그것을 마침내 자기 것, 한국인의 것, 아시안의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이 아름다움의 승리는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가?

    무엇보다도 김연아 개인의 승리다. 개인 김연아(그리고 그 어머니 등 주변)의 파나는 고투와 헌신과 인내, 그리고 타고 난 재능을 떠나서, 김연아 개인이 이룩한 오늘의 영광을 다른 어떤 것들의 공(功)인 양 가로채서는 안 된다. 예컨대 “위대한 장군 님 덕택으로….” 운운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김연아의 승리는 김연아 개인의 것이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매스컴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김연아의 승리는 민족주의 아닌 지구화의 승리다. “피겨 스케이팅? 그건 서양제국주의의 퇴폐적인 반라(半裸) 춤이다. 조선민족은 깜장 치마 흰 저고리 차림의 ‘민족적 내용의 사회주의적 표현’ 그리고 ‘김일성 민족 제일주의’로 나가겠다”고 했다면 오늘의 김연아의 승리는 없다. 김연아의 승리는 또, 자유, 자유주의, 자유사회, 개인의 자유, 개인의 권리, 다원민주주의(plural democracy)의 승리다. 옛날 소련, 동독이 올림픽에서 1등, 2등을 휩쓴 적이 있다. 사회주의적 국가 통제에 의한 ‘금메달 기계’ 제조의 결과였다. 오늘의 중국이 여전히 그런 식이다.

    그러나 자유사회는 그렇게 강제하지 않는다.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인의 자생력이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승리는 자유사회에서 꽃 필 수 있는 개인의 자생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의 인위, 조작적인 전시품에 견줄 수 없는 알짜배기 승리다.

    김연아의 승리는 또한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김연아 스스로 태극기 올라갈 때 눈물을 흘렸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승리를 태극기, 대한민국과 일체화 시켰다. 김정일, 너 지금 약오르니? 월드컵 이래 김정일과 그 남쪽 동맹군들의 기분 더럽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왜 이렇게 계속 자꾸 올라가는 지. 대한민국이 한 마디로 ‘되는 나라’라는 뜻일 게다. 망할 나라에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면서 나는 이 순간 왜 자꾸 김대중과 노무현을 뇌리에 떠올리는 것일까? 그들을 싫어하는 나는 김연아의 아름다운 승리를 바라보며 마치 내가 그들에게 이긴 것처럼 기분이 너무 너무 좋아진다. 왜 그렇지?
    (원제: 김연아-그 ‘아름다움의 승리’가 뜻하는 것"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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