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부는 결국 정치화 되고 말았다. 정치화 되었다는 말은 “운동 친화적으로 되었다”는 뜻이다. 사법부 형사 단독들이 가투(街鬪) 세력에 우호적인 판사들에 의해 침식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판사도 자신의 정치적인 취향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판결에 있어서는 ‘자신의 경향성’ 아닌 법조문과 판례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경우라도 어떤 '보수'주의자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면 그에게 당연히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또 자신이 '진보'주의자인 경우라도 어떤 '진보'주의자가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에게 당연히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 판사들은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폭력시위에 무한히 관대하다. 객관적인 잣대보다도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정서에 따라 자칭 ‘진보’의 일탈에 대해 변호인보다도 더 눈을 감는다. 위법적 가투 행위자에 대해 우호적인 판결을 먼저 내려놓고 그에 대해 사후적으로 ‘명분’을 세워 논리화 하는 식이다.
정히 그렇다면 ‘자신의 양심’만 있고 법의 객관성은 없다는 뜻인가? 그러려면 처음부터 아예 정치활동가로 나서든가 시민운동가로 나설 일이지 왜 법관이 되었는가? 그러나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고 하는 것 만큼이나 웃기는 이야기일 것이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는 격이다. 대한민국 진영은 사법부를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세상을 빼앗기는 것이 이렇듯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대한민국 진영의 시련의 역정은 그래서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