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를 타는 계획만 세우고 만들 계획은 없는 거 같은데…."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녹색성장위원회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이날 회의는 3시간에 걸쳐 녹색위원회의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대책, 저탄소 생활 기반구축 방안에 대한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첫 녹색회의라는 점을 감안, '녹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 내내 참석자들의 보고와 토론 내용을 경청하고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복수의 참석자는 전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녹색비전을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제시했으며 신년사에서도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마이크를 잡은 이 대통령은 먼저 에너지관리공단의 '에너지절약실천메뉴얼'을 들어 보이며 "책자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 잘 만든 것 같은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우리보다 필요한 사람한테"라고 격려했다. 뒤이어 이 대통령은 "그런데 내가 보니까 책을 너무 고급으로 만들어 에너지가 많이 들었을 것 같다"고 반복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웃으며 말했지만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책자가 고급스러워선 안된다는 뼈있는 지적이었다. 60페이지 분량의 이 책자는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하는 홍보자료였다고 한다.

    비교기준이 맞지않는 녹색위원회의 에너지 효율 개선 목표 설정도 이 대통령을 피해나가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자료를 보니 미국은 2020년까지 연비를 30% 개선, EU는 20%를 개선하는 것으로 돼있는데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46%를 개선하는 것으로 해놨다"며 "2030년에 46%라고 해놓으면 잘못 알면 우리가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형편없이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모든 나라가 CO2 절감 목표를 2020년까지로 하니 우리도 기준을 같이 해야 앞서가거나 뒤떨어지지않을 것 아닌가"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세워놓은 데 따라 단기목표와 장기목표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자전거 이용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현재 1.2%인 수송부담률을 2012년에 5%로 하겠다는데 그러면 자전거가 몇 대가 있어야하나"고 질문을 던진 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만드는 곳이 없다죠"라고 재차 물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자전거를 타자고 계획을 세워놓고 누가 공급하는 지, 누가 만드는 지 계획이 있어야할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은 "자전거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 2005년 삼천리 자전거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한 이후 국내 양산업체는 전무하며 소규모 조립생산업체만 존치, 우리나라의 자전거 생산규모는 2만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대통령은 "내가 모터가 붙어있는 자전거를 타는데 100% 수입한다고 한다. 올라갈 때 모터를 틀고 내겨갈 때는 끄면 되니 좋더라"고 소개한 뒤 "그런 좋은 자전거를 만들면 산업에 좋을 것 같다. 싼 자전거는 수입하더라도 고급은 우리가 만든다든지 하는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꼼꼼하게 회의를 챙기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이라며 "특히 녹색성장에 큰 기대를 갖고 계신 만큼 기대와 요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녹색비전은 환경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하며, 여기에 실용성을 더해야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