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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를 뜻이 없는 사람을 속여 '함정 단속'을 했다면 설사 실제 범행으로 이어졌어도 피고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무면허 운전을 하다 적발돼 기소된 박모(42) 씨의 사건을 공소기각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공소기각이란 검찰이 피고인을 재판에 부치는 기소를 했지만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어 아예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상태였던 박 씨는 작년 9월28일 집에 있던 중 '차량이동 바랍니다 - 구청 공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단속 경찰관이었는데, 번호가 나오지 않게 수신 번호 표시를 '000-000-0000'으로 바꿔놓았다. 놀란 박 씨는 집 근처에 세워 놓은 자신의 차로 가 시동을 걸고 20m 가량을 운전하다 그 자리에서 문자를 보낸 경찰관 등 2명에게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고 검찰은 경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씨를 기소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번호판을 휴대전화로 조회해 차 주인이 면허정지 기간임을 알고 박 씨에게 문자를 보냈고 당시 주변에는 어떤 공사도 진행되지 않고 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차를 이동해야 할 급한 상황인 것처럼 거짓 사실을 알리는 등 계략을 써 피고인이 무면허 운전이라는 범행의 뜻을 갖고 실제 범행에 이르게 한 함정수사를 자행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래 범행할 뜻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시켜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함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공소 절차가 위법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억울한 함정단속을 당했다는 박 씨의 민원을 받아 조사한 결과 경찰관들이 위법한 단속을 했다고 판단하고 해당 경찰관들을 징계하고 박 씨의 면허취소 처분도 없던 것으로 하라고 경찰청에 요구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박 씨를 단속한 경찰관 2명에게 가벼운 위법 행위를 경고하는 `계고'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그러나 박 씨의 면허를 다시 살려주라는 권익위의 요구에 대해서는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등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결과를 지켜보고 그 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서울=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