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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씨가 말끔히 단장된 봉하 마을에서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현실정치에 개입하며,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며 언론을 한참 타면서 봉하궁 정치를 하더니, 봉하대군으로 일컬어지는 노건평씨가 권력형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노무현씨는 그의 형 노건평씨 비리에 대해서 “동생의 도리로서 사과할 수 없다”는 해괴한 말로 대국민 사과를 거절했다.
노무현씨는 형의 잘못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노무현씨가 형인 노건평씨를 일컬어 “형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던 일을 상기해야 한다. 남상국씨가 자살한 배경을 생각해 보면 무언가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동생과 형의 문제를 뛰어넘어 국가권력을 통째로 쥐고 있었던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못한다면, 노무현씨는 도덕 불감증을 한참 넘어선 후안무치한 인간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형인 노건평씨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도록 엄호한 배경은 무엇보다 동생인 노무현씨가 국정을 책임졌던 대통령으로 곁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봉하마을로 내려가자마자 큰소리 치던 노무현씨의 기개(?)는 다 어디가고 남은 것은 노무현의 헝클어진 인간성과 해이된 도덕성뿐이었나.
이 사회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장으로 변해 있는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권력이 떨어지는 순간 부귀영화도 한순간이다. 한조각의 허망한 구름에 불과하다. 노무현씨가 권력을 행사할 때는 천하가 다 내 것인 것처럼 하던 권력의 속성을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럼에도 권력을 향해 또다시 줄달음질치는 듯했던 노무현씨의 강인한(?)모습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력은 숱하게 공격을 당해야 하며 또한 숱하게 공격해야만 하는 인간사중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얼마 안 있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날개다. 노무현의 그 불패신화처럼 보였던 좌파 권력도 금방 떨어졌다 그토록 깨끗하다고 큰소리쳤던 노무현의 주변은 과거 그 어느 정권보다 지저분한 권력형 비리가 고구마 캐듯이 주렁주렁 연이어 나오고 있다.
영국 철학자인 러셀은 에너지가 물리학에서 기본 개념인 것처럼 권력은 사회과학의 기본 개념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권력의 형태와 진화과정을 설명했다. 러셀은 여론, 강제력, 경제력을 움직이는 힘을 곧바로 권력의 큰 형태로 보았다. 러셀은 ‘강제력’은 그것을 지지하는 복종자의 심리적 관계에 따라서 전통적 권력(왕의 권위 등), 저돌적 권력(폭정 등)혁명적 권력(악동 혁명) 등으로 분류했다. 노무현의 권력은 러셀이 해석한 ‘강제력’에 의한 국가정체성 파괴 권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의 전형적인 또 다른 속성은 노무현 정권당시 언론을 싫어하여 기자실까지 폐쇄시킨 반민주성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노무현 정부가 기자들과 벌였던 당시의 전쟁을 나는 ‘권력·언론의 전쟁’으로 명명했었다. 기자실을 모두 없애고 통합 브리핑룸을 둠으로서 취재지원을 정형화 시키겠다는 것이 정부 취지이며 언론은 이를 자유로운 취재를 방해하는 얄팍한 꼼수로 규정했다.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함으로서 정부가 기자들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했던 노무현은 대통령직을 물러선 뒤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친노언론의 도움으로 다시 내일은 도모하는 ‘거대한(?) 정치적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노무현은 자숙하고 평정을 되찾아라. 그리고 국가와 국민들께 고개숙여 사과하라. 지난 5년간 허망한 권력의 노예가 되어 국가와 국민을 너무 심하게 괴롭혔노라고.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