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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여야가 뒤바뀐 제18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난장(亂場)판을 방불케 한다. 확산되는 금융위기 속에서 여야 모두 ‘정쟁 국감’이 아닌 ‘정책 국감’을 천명한 터라 기대를 모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전·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둘러싼 정치 공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 5년을 포함해 지난 10년간 좌(左)편향된 정책과 제도를 들춰내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명박 정부 7개월 동안의 실정(失政)과 각종 의혹을 집중적으로 따질 태세다.
이런 정략 국감 와중에 의회를 경시하는 사건이 지난 9일 국감 현장에서 일어났다. 지식경제위원회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감에서 피감기관의 한 간부가 민주당 최철국 의원을 상대로 난동에 가까운 행패를 부린 의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나중에 두고 보자. 가만두지 않겠다”는 행패에 직면한 것이다. 공기업 간부가 방약무인(傍若無人)의 극치를 보여준 이번 사건은 국회와 국감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봐야 할 정도의 중대한 사태인 만큼 국회는 유사 사례가 재연되지 않도록 실추된 권위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방송통신위 국감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사무처의 유권해석에 따른 인터넷 매체 생중계 불허를 트집 잡아 국감 자체를 파행으로 몰아갔으며, 경영층과 분규중인 YTN 노조 측의 국감장 진입 가능성에 대비한 전경 4명 배치를 문제 삼아 고성과 삿대질의 난장판을 연출했고 하루 종일 정회를 반복했다. 국회의 권위가 어느 때보다 돋보여야 할 국정감사 기간 중에 오히려 국회의 위상이 실추하고 있는 이유는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의원들의 막말과 추태가 국감 권위를 스스로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국감에서 피감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파헤친 사례도 간혹 있어 천만 다행이다. 매년 국감에서 도마 위에 올랐던 식약청은 올해 국감에서 6급 및 8급 직원이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사용이 금지된 방부제가 든 식품원료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요즘 식약청에선 지도단속 대상이 되는 업체에 강연을 해주고 고액의 강연료를 받아 챙기는 일이 인기라는 얘기도 들린다. 올 8월까지 식약청 공무원이 외부강의로 받은 돈만 1억9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썩을 대로 썩은 식약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또한 공기업 사장들이 해외 출장 시 일등석을 이용하고 출장비도 대통령보다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발전자회사와 석유공사, 광업진흥공사, 코트라, 식품연구원 등 30개 공기업의 임원은 사규로 해외 출장 시 일등석을 이용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유가 인상으로 인한 손실보조금을 지원해달라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한전 자회사인 남부발전과 서부발전 등은 임원 뿐 아니라 본부장들도 일등석을 이용하며 호화판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다. 주인 없는 공기업의 조직 전반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있다는 얘기다.
지난 1988년 제 13대 국회에서 국정감사 제도가 다시 도입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국회는 ‘성년 국감’의 원숙한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됐다. 무엇보다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따지는 국감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국민 관심이 쏠린 각종 사안들에 대해서 국회는 감시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해야 한다. 생산적인 국감에 대한 무한책임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있다.
그러나 18대 새 국회가 출범해도 변하지 않는 여야의 구태의연한 국감공방과 의원들의 이전투구에 국민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 불신만 가중시키는 국감은 여야 모두에게 독배(毒杯)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남은 국감기간 동안만이라도 국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