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곧 북한에 식량 50만 톤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한국 정부가 초조해하고 있다. 스스로 초기에 세웠던 원칙들마저 포기할 태세다. 김정일이 식량을 지원해달라고 빌지 않으면 줄 수 없다던 말은 없던 걸로 하고 싶다는 제스처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우리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국과 경쟁하는 꼴이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다. 동맹국이라면 원칙적으로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친북정권인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공동의 적은 사라졌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공동의 적은 사라지고 한국의 중재로 미국이 북한과 직접 교섭하게 되었다. 그 때 형성된 관성이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목표와 한국의 목표는 다르다.

    미국은 주된 관심사가 대량살상무기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에는 핵확산을 막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되었다. 이를 위해 6자회담이라는 틀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6자회담도 초기와 비교할 때 많이 변질되었다. 핵폐기 목적이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미북 협상 장소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핵실험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북한의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이라는 목적을 성취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목표는 통일이다. 물론 그 중간과정에서 안보관리를 하여야 하지만 그래도 궁극적 목표는 자유통일이다. 설사 이번 미북합의에 의해 북한의 핵이 제거된다고 하여도 한국은 목표가 달성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 의해 북한의 체제가 보장된다면 이것은 한국의 통일목표와 상반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6자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은 서로 배치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이 주도하여 통일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역할을 미국이 맡았다고 치부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한미동맹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한다면 미국도 궁극적으로 한국 주도의 자유통일을 지지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미북 합의는 중간 단계로 생각하여야 하며 한국은 궁극적 목표인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북한 동포의 부족한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이든 미국이든 또는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 이 몫을 이번에 미국이 감당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면서 모니터링과 관련하여 약간의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다행인 측면이 있다. 이것이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의 일환이든 미국의 직접협상 전략이든 상관없다. 우선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50만 톤의 식량지원으로 북한의 식량사정이 영구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체제개혁이 없이는 식량자급자족은 절대로 달성할 수 없다. 오히려 개혁과 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와 통상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그 척박한 북한 땅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한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지금은 김정일이 한국을 향해 고소하다는 듯이 뻐기고 있을지 모르나 그러한 자만심도 잠깐이면 꺾이게 되어 있다.

    시간은 북한이 직면한 최대의 적이다.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북한이 아무리 핵을 가지고 있어도 1년, 2년, 나아가 5년, 또는 10년을 이런 상태로 버틸 수 없다. 꺾이지 않고서 체제의 비효율성에 기인하는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한국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 북한은 항복하게 되어 있다. 현 상황에서 오직 시간만이 한국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북한이 미국을 믿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역도”라고 욕을 하고 제2의 서해전쟁이니 6.25전쟁이니 하고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초조해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한국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이런 욕설과 협박을 받으면서까지 동정적으로 행동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절박하게 느끼고 무릅을 꿇고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는 절대로 굽혀서는 안 된다. 그 전에 굽힌다면 김정일의 위상만 높혀준다.

    오히려 정부는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이유로 사회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는 종북좌파세력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통해 김정일에게 그런 식의 대남전략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한국의 반역자들이 있기에 김정일은 지금 큰소리를 치며 한국 대통령을 욕하고 전쟁으로 협박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종북좌파를 방치한다면 북한과의 대결에서 승산은 없다. 그야말로 종북좌파들처럼 김정일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게 되어 한국은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간은 김정일에게는 최대의 약점이요 한국에 있어서는 최대의 강점이다. 미국이 북한과 가까워진다고 하여 한국이 초조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을 한국 페이스로 끌어 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지금 초조해하고 있어 걱정이 많이 된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장 통일을 할 수 있는 묘책이 없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추진해야 한다. 초조해 하면 일을 그르친다. 제발 느긋하게 몇 년을 기다리며 장기적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