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처리를 앞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마지막 남은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할 지 여부는 이명박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과 직접 연결돼있다는 이유때문에 '인기없는' 노 대통령의 막판 '깽판'에 정치권의 관심이 몰리는 상황이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은 2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상식 밖의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주 대변인은 "노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이 당선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하면서 "다만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개편안의 배경과 필요성을 빠른 시일 내에 상세히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 없이 새정부가 출발할 것이란 비관적인 예측은 하고 싶지 않다"는 기대를 나타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도 이날 "노 대통령 기자회견 내용에 대한 코멘트는 국민이 알아서 할 몫"이라며 "다만 인수위 몫은 청와대, 여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각 부처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주 대변인이 노 대통령과 소모적인 충돌을 거부하면서 국민적 이해와 설득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과 맥이 닿아있다.

    인수위 계획대로 개정안이 2월초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15일 동안 '서명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내각 구성 시점이 이 당선자의 취임일인 2월 25일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말그대로 노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는 예상치 못한 '암초'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거부권 시사를 통해 새 정부와 대립전선을 형성하면서 신당을 제치고 모처럼 영향력을 과시한 효과를 얻었다.

    노 대통령의 서명없이 개정안이 법률로 확정되는 경우는 두가지다. 먼저 노 대통령이 15일 이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 재의결로 가능하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찬성으로, 국회가 재의결하면 거부권에 상관없이 법률로 확정되지만 한나라당은 재적의원 298명의 3분이 2선인 200석을 확보해야한다. 현재 한나라당의 130석은 이에 턱없이 모자라 대통합민주신당의 '전폭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또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대로 단지 15일 동안 법안을 '방치'할 가능성도 높다. 15일이 지난 후 5일 동안에도 노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대신 공포할 수 있지만 내각 구성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감안하면 새 정부 출범 일정은 촉박하다.

    신당을 탈당한 유시민 의원이 이날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굴욕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을 가져오면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거부권 행사'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인정하면서도, 노 정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굴욕'이라는 표현으로 피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유 의원의 주장은 '경제살릴' 새 정부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목잡기가 실제 행해질 경우 과거 '탄핵역풍'과 같은 국민적 저항이 현 여권에 닥칠 것이라는 정치권의 시각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