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공무원은 무쇠도 녹여… 개혁 쉽지 않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선을 보였다. 장관님 의자 5개가 치워진 게 우선 눈에 띈다. 청와대도 축소됐다. 여기서도 장관급 감투 3개가 날아갔다. 이번 개편으로 정부 내 장관급은 11명이 줄고, 차관급은 8명이 준다고 한다. 인수위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공무원 6951명이 감소하고 연 4900억원의 예산이 절약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이다. 그나마 반대 당들이 없어질 무슨 부, 무슨 부는 반드시 되살려내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니 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정부 인수위는 우리 공무원 1인당 평균 연봉이 7000만원대라고 했다. 이만하면 대기업 가운데서도 톱 클래스에 속하는 셈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런 공무원들을 연 평균 1만4000명씩 5년 통틀면 7만여명을 늘렸다. 통 크게 논 것이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멋대로 돈을 꺼내 썼으니 이랬지, 자기네 지갑을 털어 하라고 했으면 몇 번 까무러쳐도 절대 이러진 못했을 것이다. 다달이 공무원들 월급 대주는 것으로 국민 부담이 끝나지 않는다. 국민들은 푼돈 국민연금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면서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 그보다 몇 배 많은 공무원 특별연금을 꼬박꼬박 챙겨드려야 한다. 이런 효자 국민이 없다. 이 정권 사람들이 돈 모아 '국민 송덕비'라도 세워주고 떠날 법한데 어찌된 일인지 감감무소식이다.

    이번 개편에선 또 416개나 되던 정부위원회 가운데 215개가 사라졌다. 정부위원회를 구경해본 적이 없는 국민들로선 이게 무슨 뜻인지 감이 와닿지 않을 듯하다. 정부 각 부처에 달린 또는 '과거' 어쩌고 하는 그럴싸한 간판을 내다 건 412개의 위원회에는 적은 곳은 20~30명, 많은 곳은 40~50명의 위원이 있다. 위원장이 장관급 대우를 받는 곳도 여럿이다. 어떤 위원회는 1년에 몇 번씩 모이고 공연한 부산을 떠는 위원회는 다달이 모여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밥만 먹기가 쑥스러운지 참석자 한 사람당 3~5분 가량 돌아가며 발언도 하게 한다. 닳고 단 지당한 말씀이 한 바퀴 돌면 그걸로 회의는 끝이다. 참석자에겐 거마비로 20만~30만원씩 쥐어준다. 귀한 시간을 축내가며 지방에서 비행기편으로 올라오신 분도 적지 않다. 이 정권은 이런 쓸 데 없는 위원회를 만들고, 직원을 채용하고 '밑 빠진 시루에 물 붓기식 행사'를 한답시고 한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쏟아 부었다. 위원회는 더 줄여야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참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정부조직 개편만큼 쉬운 일은 없다. 무슨 부에다 이걸 붙이고 무슨 부에선 저걸 떼낸다는 법만 만들면 된다. 교과서·참고서·외국 사례가 수도 없이 나와 있다. 현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책상물림들도 너끈히 해낼 수 있다. 새 정부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한 과시효과도 상당하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개막 기념으로 조직 개편 쇼부터 상영하는 것은 이제 우리 정치의 관례가 돼버렸다. 그러나 5년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거개가, 아니 전부가 도로아미타불이다.

    외국도 비슷하다.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60년대 중반부터 '세금 감면' '연방정부 축소' '정부 지출 삭감'을 외쳐온 신념의 사람들이었다. 81년 레이건이 정권을 잡자마자 교육부부터 문닫게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무진 애를 써서 150개 교육부 사업을 120개로 줄였다. 그런데 8년 후 퇴임할 때 보니 그게 208개로 오히려 더 늘어났더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무쇠 같다던 그들의 신념마저 녹여버렸다. 공무원은 무쇠도 녹이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진짜 조직 개편은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정부조직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공무원들이 해서는 안될 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붙들고 앉아서 '허가'다 '인가'다 하는 수단으로 국민을 옥죄고 기업을 들볶고 민원인을 등치는 행위를 암 수술하듯 들어내는 작업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무원 저항도 몇 배 크다. 그러면서 생색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거창하게 부처 통·폐합이라는 개막의 팡파레를 울리고선 조직 개편 문제를 묻어 버렸다. 이명박 정권은 어떨까. 이 정권 저 정권을 거치며 용두사미로 굳어져 버린 정부조직 개편의 역사를 '용두용미(龍頭龍尾)'의 모습으로 새로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솔직히 반신반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