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갈 무렵 한 중진 의원은 '실제 중립지대에 있는 의원이 몇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잠시 따져본 뒤 "나를 포함해 5명 정도 될 걸"이라고 답했다. 그 중 두 명은 경선에 뛰던 원희룡 홍준표 의원이었다. 

    나머지 120명이 넘는 의원들 모두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게 줄을 섰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경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바일 투표와 10~12일 실시한 여론조사 그리고 14일 8개 지역에 대한 경선을 한꺼번에 치른 뒤 15일 후보자를 발표한다. 지금쯤이면 통합신당 역시 '중립'의원을 손에 꼽아야 할 시점인데 어찌된 일인지 중립지대에 있는 의원들 숫자가 3분의 1이 훌쩍 넘는다.

    1년 이상 지속된 한나라당 경선에 비해 경선일은 적지만 후보 간 경쟁이 덜 치열한 것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 뒤면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통합신당 의원들은 중립지대에 머물고 있을까.

    이유를 묻자 통합신당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후보들의 본선 경쟁력을 꼽았다. 현재 경선에 뛰고 있는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세 후보 모두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누가 되도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한나라당과 달리 '누가 나와도 이명박에 이길 수 없다'는 통합신당 상황이 의원들을 중립지대에 묶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세 후보 누구든 본선경쟁력을 보였다면 이렇게 의원들이 발을 빼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누가 나와도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뭣 하러 줄을 서겠느냐"고 했다.

    지금 통합신당의 경선이 사실상 범여권의 '예비경선'에 불과하다는 점도 의원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요인이라고 한다. 15일 후보자가 선출돼도 이 후보는 다음날 뽑힐 민주당의 대선후보와 외곽에 있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의 단일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후보들 역시 "이번이 끝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후보 선출 뒤에도 정치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쉽게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모 의원 보좌진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는데 지금부터 싸움에 끼어들어 힘 뺄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는 식의 사고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신의'보다 '실속'을 우선시 하는 통합신당 의원들의 성향 탓이란 주장도 나온다. 실제 통합신당 내 386 의원들과 몇몇 중진 의원들의 경우 '손학규 대세론'이 불 당시만 해도 손학규 영입에 공들이고 지지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혔지만 386 의원들은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판이 일자 캠프 합류가 아닌 당직선택으로 입장을 바꿨고 중진 의원들은 '손학규 대세론'이 꺾이자 발을 뺐다. 상황이 이렇자 당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게 비록 공천 때문이라 해도 후보에 대한 충성과 신의가 있었는데 우리당 의원들은 신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면서 "결국 실속만 챙기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공천'이다. 손 후보의 말처럼 당 내부에는 패배의식이 크다. 때문에 의원들이 대선이 아닌 내년 총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총선을 위한 보다 확실한 선택을 할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친노진영 독자세력화' '영남신당' '정동영 당권밀약설' 등이 경선 내내 등장한 것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라 할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지금 각 지역에선 대선 보다 총선 공천 전쟁이 한창"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