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산업지표 동반 부진, 원유 시장 기대치 '붕괴'러시아 변수 완화-非OPEC 증산, 유가 하락 부채질글로벌 IB, 내년 유가 50달러대 예상환율 등 구조적 요인이 가로막은 국내 기름값
  • ▲ 서울 시내 주유소.ⓒ연합뉴스
    ▲ 서울 시내 주유소.ⓒ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공급 과잉 우려와 중국 경기 둔화 신호가 맞물리며 4년 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15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1.08% 하락한 배럴당 56.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연초 대비 20% 이상 급락한 것이다.

    국제 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60.56달러를 나타내는 등 60달러 초반까지 밀리면서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이번 유가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소비 둔화가 꼽힌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1월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3%에 그쳤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2% 후반대를 크게 밑도는 수치로, 2022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중국의 산업생산 증가율도 4.8%에 머물며 기대치를 하회했다.

    중국 경제의 핵심 축인 내수와 제조업이 동시에 힘을 잃고 있다는 신호가 명확해진 것이다.

    중국의 소비 둔화는 단기 경기 사이클 문제를 넘어 구조적 수요 약화로 해석된다.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중국은 가격을 좌우하는 '한계 수요국'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고용 불안, 소비심리 위축이 겹치며 원유 수요가 예년처럼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에 전기차 보급 확대와 에너지 효율 정책 강화가 더해지며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세 자체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국제 유가 하락은 단순한 원자재 가격 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기 둔화가 실물 수요 감소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기의 바로미터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 ▲ 미국 텍사스 유전. 출처=APⓒ뉴시스
    ▲ 미국 텍사스 유전. 출처=APⓒ뉴시스
    한편,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기대도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인식이 확산세다.

    시장은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제재 완화 또는 우회 수출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상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비(非)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생산 확대가 부담 요인이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은 고유가 국면에서 빠르게 늘었고, 최근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생산이 급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1~2년간 글로벌 원유 공급이 수요를 상당 폭 웃돌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구조적인 공급 과잉 국면 진입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주요 투자은행들은 국제 유가의 중장기 전망을 잇따라 낮춰잡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석유 공급 파동으로 WTI는 배럴당 연평균 53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브렌트유 가격이 연평균 55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이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원유 거래는 달러 기준으로 이뤄어져,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경우 수입 원가 하락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되기 때문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제 유가 하락분이 국내 기름값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최근 리터당 1700원대 초반에서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경유 가격 역시 국제 유가 하락 폭에 비해 제한적인 조정에 머물고 있다.

    정유업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기름값이 국제 유가와 즉각적으로 연동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을 지적한다.

    환율 외에도 세금 비중이 높은 가격 구조, 정제 마진, 재고 평가 손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가격은 상대적으로 하방 경직성을 띤다는 설명이다.

    국제 유가의 장기 저점 형성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향후 시장은 중국 경기 회복 여부와 주요 산유국의 공급 조절 능력을 핵심 변수로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