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성결대학교 행정학부 서옥식 외래교수가 뉴데일리에 특별기고한 글입니다>


    핵 문제 해결없는 평화협정은  ‘사기’


    노무현 대통령이 ‘2007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협정이라고 확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라는 많은 국민과 언론, 야당의 요청에 대해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 “시비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가서 싸우고 오라는 뜻”이라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 같은 자세는  평소 그의 북핵 관련 언급과도 일맥 상통한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방어용’ ‘일리 있다’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핵실험 직전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며 핵실험 가능성을 부인해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였다.


    핵 문제는 6자회담에 맡기고 자신은 평화체제에만 매달리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남측이든 북측이든 핵문제 해결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사기’(詐欺)다. 국민은 노대통령에게 북한 가서 핵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당장 해결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핵 포기 등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의 책임 있는 언질을 받아내 6자회담이 좋은 결말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과 금년 9월 등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제도적 장치를 추진하자는 뜻을 밝혔다. 관련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모든 핵을 폐기할 경우에만”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이 내용을 모를 리 없는, 그리고 부시의 그 같은 제의에 동의한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얘기를 하라는 것은 싸움하고 오라는 뜻”이라고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평화협정 ‘의지’가 아니라 북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북핵 해결 없는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평화의 가장 큰 장애가 북한 핵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제시한 것도 그래서다.


    남북한 간에 핵폐기는 물론 신뢰구축도, 군사적인 긴장완화 조치도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또는 종전협정을 거쳐 평화협정을 위한 구체적 협상이 진행될 경우 6·25전쟁 이후 성립된 한반도 및 주변 안보 질서에는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의 작전지휘권 단독 행사로 인해 한·미연합사 해체와 맞물리면서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된 혼란을 부를 뿐 아니라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평화협정이 무엇이기에 노대통령이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노대통령은 김정일과 평화에 관한 선언 등 평화관련 문서에 서명해 ‘평화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도 남기고 이를 통해 12월 대선에서 여권후보를  당선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최근 신정아·정윤재 스캔들을 해명하는 기지간담회에서 “ 이제 평화선언도 있을 수 있고 그걸 위한 협상의 개시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제안할 생각이 있느냐의 수준이 아니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과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이 규정하는 평화의 의미는 ‘공산화


    평화협정이란 북한이 휴전협정이후 꾸준히 주창해 온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세상이 평온한 상태>로 요약된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결론부터 말하면 <공산화>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를 의미한다. 북한은 자본주의의 본성은 전쟁과 침략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쟁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는 만큼 이를 타도하고 전 세계가 공산화되어야만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고 주장하고 있다(정치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3, pp.1162-1163). 

    다시 말하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폭력혁명이나 무력통일에 반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세력,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국가를 전쟁세력으로 규정, 이들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화는 반드시 계급투쟁, 즉 전쟁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전쟁으로 계급투쟁을 하고 계급소멸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무력과 폭력이 공산혁명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평화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달성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점에서 자본주의국가들의 평화를 ‘부르조아 평화주의’로 규정한다. 북한은 이 부르주아평화주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인민들의 염원을 악용한 것으로, 제국주의가 전쟁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지 않아도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설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김일성 저작선집 4권 p.484).


    북한은 궁극적으로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가 소멸하고 법도 경찰도, 군대도 없는 사회를 평화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기본적으로 국가나 법, 경찰, 군대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를 위해 존재하는 억압기구내지 억압장치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로서 모든 악의 원천이라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런 전도된 평화관을 가지고 용어혼란전술의 일환으로 ‘평화’란 용어를 대남 협상전략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정전협정을 대미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연방제통일방안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을 제의하면서 ‘평화적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평화공세’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적화통일 이란 수순을 밟아가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즉, 휴전선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결코 올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을 반드시 적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노동당 규약에도 명시돼 있다.


    대표적인 국제 ‘평화  사기극’베트남평화협정


    그러나 평화협정이 반드시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에 1973년 1월27일 체결된 역사적인 파리평화협정은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사기극’이 되고 말았다. 협상의 주역인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월맹)정치국원 레둑토는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레둑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상을 거부했다. 그가 말한 ‘평화’는 ‘공산화’였다. 

    평화협정 체결 직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남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평화협정도 노벨상도 결코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당시 평화협정에는 교전 당사국인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베트남 임시혁명정부) 등이 서명했다. 키신저는 이 평화협정을 담보하기위해 북베트남에 40억달러(미국 직접원조 20억달러, IBRD 차관 20억달러)의 원조까지 제공, 이것으로 파괴된 북베트남의 경제를 재건키로 했다.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켰다. 그리하여 4개국 250명으로 구성된 휴전감시위원단은 하노이와 사이공(호치민시티), 그리고 휴전선을 감시하게 되었다. 한편 북베트남에서는 하반라우 외무차관이 150명의 고문단과 함께 사이공에 체류했다. 일종의 인질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믿지 못한 미국은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시켰다. 결과적으로 파리휴전협정은 4+4+4, 즉 무려 12개국이 담보하고 보증한 값비싼 서명문서였다. 그리고 남베트남과도 방위조약을 체결, 미군 철수 후 북베트남이나 베트콩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을 투입, 북폭을 재개하고 남베트남 지상군을 지원키로 굳게 약속했다. 이와 함께  미군이 철수하면서 그 동안  보유하고 있던 각종 최신 무기까지도 모두 남베트남에 양도, 그 무렵 남베트남 공군력은 전세계에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소한 10년간은 휴전체제가 유지되리라는 키신저의 믿음은 사라지고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과 베트콩 연합군에 의해 수도 사이공이 함락됨으로써 베트남은 완전 공산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십수년간 1000여만명이 처형되거나 재교육 캠프에서 죽어갔고 1백만 이상의 보트 피플이 해상을 떠돌다 10만 이상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삶이 계속됐다.


    결국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키신저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북베트남은 미군의 북폭과 경제봉쇄로 피폐해진 나머지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자 평화회담에 나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었고, 전술만 바꾼 기만이었다. 미국과 평화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서 침략군을 몰아내고 민중봉기를 일으켜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하고, 무력으로 남반부를 해방시켜 조국통일을 달성한다는 소위 통일전선전략을 재정비․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 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실제 베트남 공산화는 남한의 적화를 노려온 북한을 고무시켰다. 6.25전쟁에서 무력통일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김일성은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바라보면서 남한을 다시 한번 밀어붙일 생각을 했다. 1975년 4월 단 한 대의 항공기도 없었던 북베트남군이 당시 세계 최강의 미군을 게릴라전으로 패배시키는 것을 본 김일성은 상당히 고무돼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북경에 도착한 날, 환영 만찬석상에서 김일성은 “(남한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얻는 것은 조국통일(In this war we will only lose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and will gain the country's unification)”이라면서 남침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이 이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측은 “북한이 이런 시기에 남침을 하게 되면 미국과의 전쟁이 되고,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으로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남침은 불가하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의 슐레신저(
    James Schlesinger)국방장관은 “만일 북한이 한국을 재침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핵사용 발언으로 북한의 남침전쟁을 억지했다.


    북이 노리는 남한 대선 구도-평화세력  vs. 전쟁세력


    북한은 근자에 들어
    핵무기개발을 합리화시키고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한국과 미국을 ‘전쟁세력’이라고 몰아가기 위해 ‘평화’란 말을 부쩍 많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2006년 신년공동사설 발표 이후 한국의 대선을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은 금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막기 위한 ‘반보수대연합’을 촉구했다. 얼마 전에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에 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올 것이라는 등의  망언을 늘어놓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일부 정치권인사들이 북한이 사용하는 평화의 개념을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세력’ 운운하며 북한의 평화공세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대선을 전쟁과 평화의 구도로 몰아가기도 한다. 친북좌파들은 아예 북한의 평화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친북좌파세력은 북한의 구호처럼 ‘평화’ ‘반전’ ‘반미’를 외치지만 유독 ‘반핵’ 이란 구호는 사용을 거부한다.


    ‘평화’를 말하는 자들이 북한 전체 인민들의 평화를 말살하고 있는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며, 그들의 핵 도박을 음양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김일성-김정일 공산독재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김정일체제의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국가, 2007년 세계경제자유지수에서 조사대상국 157개국 중 157위를 기록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또한 ‘평화’를 외치는 세력들은 오히려 미국을 ‘남북통일 반대국가’로 규정하고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을 수구냉전세력, 사대주의자, 전쟁옹호세력 등으로  매도하면서 ‘평화’와 ‘반전’을 북한의 독제체제와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과 친북좌파세력이 주장하는 평화란 구호의 이면에는 북한 김정일의 세습-독재-전체주의 체제 옹호와 한국의 안보를 무장해제 시켜 전한반도를 적화하려는 전략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