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사회철학자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이와 관련된 좋은 말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사회는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견해는 흔히, 너무나 쉽게 폭력적인 조치를 초래한다”와 “우리의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먼저 위대한 인물에 맹종하는 습관부터 타파해야 한다”를 들 수 있다.

    인류 사회가 많은 발전을 해 오면서도 숱한 비극과 야만의 역사를 낳은 것은 어떤 특정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과 이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강요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탄압 때문이었다. 중세를 암흑 시대로 만든 기독교, 유토피아의 기획으로 출발했으나 반(反)인륜적인 체제임을 드러내고 끝내 종말을 고한 공산주의, 그리고 세계 대전을 일으킨 주범이자 20세기를 야만의 세기로 기록하게 만든 파시즘과 나치즘이 그랬다. 또한 강대국들에 의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 대한 식민화도 인종주의 혹은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에는 특정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와 절대적인 복종이 늘 깔려 있었다.

    인류 역사는 이런 무수한 희생 끝에 절대 정신과 무오류의 신화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닫고 ‘열린 사회’를 향하여 조금씩 진보해 가고 있다. 여전히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적 충돌이 전개되고 있고,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남아 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는 글로벌 시대의 대세를 막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국가 만능주의’와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가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좌파와 우파는 점점 수렴(收斂)되어 가고 있다.

    세계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해 온 대한민국은 그 동안의 시행착오와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자는 결의에 차 있다. 해방-건국-분단-산업화-민주화-정권교체라는 짧지만 숱한 우여곡절을 낳은 한국 현대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절대적인 가치도, 무결점의 지도자도 없음을. 분단을 잉태한 것이 이데올로기의 충돌이었다는 점에서 남북통일도, 국민적 통합도 열린 정신과 열린 리더십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인물인 박정희와 김대중을 넘어설 때, 김일성과 주체사상의 잔재(殘滓)를 완전히 씻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선진국을 거론할 수가 있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그 시험대이다. 정책 노선과 리더십의 경쟁이야 응당 치열하게 이루어져야겠지만, 그것이 근본주의적 충돌과 도덕성 시비로 전개되어서는 소기의 목표인 선진화를 앞당길 수가 없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청사진과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놓고 진지하게 담론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엽말단적인 신상의 문제를 놓고 싸운다면 ‘차선(次善)’은커녕 ‘차악(次惡)’의 경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이 종교인이 아닌 다음에야, 대한민국의 제도 속에서 몸을 담은 지도자 치고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단히 도덕적이라 평가받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의 신사’로 자타가 공인해 온 김근태 의원조차도 스스로 불법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불법이나 탈법을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빌미가 되어 ‘미래를 향한 선택’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향후 5년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좋은 구상과 지도력을 갖고 있는가가 우선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볼 때, 오점(汚點)이라는 점에서 여·야 후보들은 오차 범위 내 접전이다. 국민들은 모든 후보들에 대하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사자인 후보들은 그럴 주장을 할 형편이 못 되는 것이다. 지금 후보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대한민국이 잘 된 것은 국민들과 민간의 노력 덕분이고, 잘못된 일은 자신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마지막 봉사를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나는 괜찮고, 다른 후보는 형편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은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또 다시 그런 지도자를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지도자는 틀림없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정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괜찮은데, 국민들이, 언론들이 나빠서 그렇다’고 할 공산이 크다.

    요컨대 집권을 꿈꾸는 정당들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여·야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네거티브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진 자산 가치와 아이디어를 내놓고 승부를 걸기보다는 남의 약점이나 파헤치고 거기서 반사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 ‘좌파 집권 10년을 종식하자’는 한나라당이나, ‘냉전 세력에게 정권을 줄 수 없다’는 여권이나 모두 똑같다. 후보들 역시 별반 다름이 없음은 수개월 전부터 잘 보여주고 있다. 저러다 네거티브의 대상이 사라지면 무엇을 갖고 승부수를 던질지 궁금하다. 남의 약점을 잘 파헤치는 기술자들이 득세하는,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풍토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