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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전공)가 쓴 시론 '천하가 웃을 대통령의 헌법소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번 탄핵 때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사할 일이 또 생겼다. 선관위의 선거중립위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하니 그렇다. 역대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 중에 일반 국민들, 특히 헌법학자들로 하여금 평소에 잘 안 보던 부분의 헌법공부를 이처럼 철저히 하게 만든 분이 있었던가. 한편으로는 법치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역설적이게도 이를 통해 헌법연구의 촉진 및 헌법의식의 고양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헌법공부를 시키는 것은 고맙지만, 남의 나라가 아니고 내 나라의 대통령이, 되지도 않을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말리고 싶다.
우선, 헌법소원은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는 제도이다. ‘공화제적 군주(君主)’로도 불리는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다. 헌법소원 제도의 이념이나 법리(法理)로 볼 때 그러한 강력한 국가기관이 권력 없는 일반국민이나 될 수 있는 헌법소원의 청구자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이 아니다. 선관위가 문제 삼은 것은 대통령의 선거관련 발언 등이었지 자연인 노무현의 발언이 아니다.
나아가, 말단 공무원의 경우와는 달리 극히 신변적인 사적 영역을 제외하면 대통령에게 공적 영역과 구별되는 개인 영역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신분이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사적 영역까지 샅샅이 검증의 대상으로 삼는 것 아닌가? 사적 영역 하나하나가 나라의 운명(외교·안보·통일·경제·대선관리·법집행 등 그것은 대통령의 책무이다)과 밀접히 관련되는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인 까닭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원이기도 하다. 권력이 많으면 많은 만큼 그 권력자 개인의 영역이 작아지는 것은 또한 자연스러운 법리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의 문제의 발언 등이 진정으로 개인 자격에서 행한 것이란 말인가? 대통령이 직접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선관위가 공증하고 있는 바다. 선관위는 이러한 판단을 하는 권한을 가진 헌법기관인 것이다.
선관위의 선거중립위반 결정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는 소위 헌법상의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견제장치 없는 대통령의 권력은 비대해진 무소불위의, 선거에서 ‘깽판’ 칠 수 있는 권력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선관위의 결정은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장치의 발동이지 개인의 기본권 침해가 아니다.
만에 하나 선관위의 결정에 대하여 대통령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 가정할지라도 다른 구제수단이 있으면 헌법소원은 제기할 수 없다. 선관위법 등에 명문규정은 없지만 먼저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기각결정 등을 얻어야 비로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공직선거법 제9조의 중립조항이 헌법(제37조 제2항)에 반하여 대통령 개인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되지 않는다. 공정한 선거의 최고관리자인 대통령이 선거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추어 중립의무 부과는 결코 부당, 불합리한(‘애매모호한’) 대통령 개인 기본권의 침해가 된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어느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므로 헌법 법리로나 정치 도의로나 이번 대통령의 헌법소원은 말이 안 된다. 레임덕을 피해 끝까지 살아서 판을 휘저어 보려는 이 같은 헌법소송은 외국 사람이 알면 나라가 창피한 일이 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