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북에서 귀순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설을 맞아 발표한 특별 메시지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지금부터 62년 전, 우리는 1945년에 8.15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즉 미국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소련식 사회주의 독재의 길을 따라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되었습니다. 북한은 소련식 사회주의를 따라갔고 남한은 미국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따라 갔습니다. 그 결과 남과 북은 천양지차이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역시 이와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대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길을 계속 고수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김정일의 독재체제를 찬양하고 그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그런 문제가 현실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한 번 우리 민족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될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 정치정세와 관련해서 당연하게 우리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사람들이 어떤 결심을 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합니다.

    한국의 정체성과 성공비결

    먼저 우리는 한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한국이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가 하는데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8.15해방을 맞이해서 우리는 남과 북이 갈라졌지만, 남한에서도 복잡한 정세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남한의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했고, 그것이 마치도 진보적인 길인 것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소련 군대가 점령한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의 정세도 복잡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확고하게 미국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따라가야 한다는 그런 입장을 고수하고 그 길로 이끌어 나간 첫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확고부동한 결심을 하고서 나라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에 6.25남침 전쟁 때 전쟁을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우리 한국의 정체성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도 한국은 경제를 근대화하고 급속히 발전시켰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백 년, 이백 년 걸려야 할 경제비약을 단 몇 십 년 안에 해 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이것을 해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경제 건설을 떠나서, 현대적인 경제를 건설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현대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그 영도 밑에 민주주의의 기초가 마련되었다면, 그것을 현대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침으로써, 즉 시초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갈 것을 결정한 것과 모든 것에 앞서서 현대적 자유민주주의적인 경제를 발전시킨 것, 이 두 가지가 합해서 대한민국의 확고부동한 정체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 두 가지가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밝혀내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고 또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정체와 실패의 요인

    그러면 북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또 그것에 대한 기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북한에서 자체의 정치적인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소련 군대의 점령 하에서, 북한에 소련식 사회주의 제도를 마련한 것은, 소련 고문들이 나와서 했습니다. 소련 고문들이 스탈린식 독재를 그냥 모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체 힘으로서 만들 힘이 없었습니다.

    또한 400~500명이나 되는 소련 태생의 조선 사람들이 나와서 소련 고문들과 함께 이 사회주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정치적인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스탈린식 사회주의 독재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봉건적 잔재가 농후하다 보니 소련식 스탈린식 독재체제가 점차 봉건화되었습니다. 6.25전쟁을 계기로 해서 김일성 자체의 독재체제, 즉 스탈린이 사망하고, 6.25전쟁을 계기로 해서 김일성의 자체의 독재체제가 수립될 때, 기본은 스탈린식 독재체제이지만, 이것이 봉건적인 사상과 결부해서 더욱 독재가 악화되었습니다.

    민주주의적인 기초는 없고 봉건적 잔재는 많다보니 소련식, 스탈린식 사회주의독재마저 더욱 봉건화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일 시기에 와서 이것이 수령개인독재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김정일 개인 독재가 스탈린식 사회주의 계급독재와 다른 점이 어디에 있는가.

    스탈린 시기만 해도 노동계급은 가장 선진적인 계급이기 때문에 전 사회를 대표해서 독재를 실시할 수 있다, 공산당은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선진부대로서 독재를 실시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맑스주의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공산당원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공산당원인 수령이 공산당을 대표해서 독재를 실시할 수 있다, 여기까지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스탈린 시기의 각국에서 다 채택한 스탈린식 독재, 말하자면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를 허용하는 그런 독재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것을, 자기 삼촌과 함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더욱 강화하기위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를 시켰는가하면, 수령이 있고서야 공산당이 있을 수 있다, 공산당이 있고서야 노동계급이 있을 수 있다, 노동계급의 영도를 받고서야만 자주적인 인민대중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수령은 당과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의 생명의 원천이고 은인이고 어버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효성은 모든 당원들과 인민의 생의 목적이다. 이런 식으로 되었습니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재체제입니다.

    또 한 가지 참고해서 말할 것은, 김일성 자체는 자기가 후에 스탈린식 독재를 좀 더 봉건화하는 데서는 작용을 했지만, 스탈린식 독재체제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 소련 고문과 소련 태생 조선 사람들이 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김정일은 이러한 수령 개인 독재 체제를 자기 머리로 세우고, 자기의 조직력으로서 이것을 제도화하고, 생활화하고, 무자비하게 실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시키고 독재를 강화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독재를 강화하는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큰 독재의 기본무기는 군대입니다. 군대를 군국주의로 나가게 되고, 군사독재를 실시하게 되고, 수령을 군사적 지도자로서 장군님으로 부르게 되고,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선군사상이요 뭐요 하면서 완전히 모든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모두 말살하고 철저한 개인독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와 문화를 다 희생시키고 온 나라를 군사화해서 군사독재를 실시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북한이 실패한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95년 이후에 그가 대량적으로 수백만이 굶어 죽게 되고 온 나라가 감옥으로 변하게 되고 사람들이 모든 민주주의적 권리를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정신마저 다 빼앗긴 산송장으로 만든 것은, 철저한 개인독재의 결과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김정일의 독재는 최초에 맑스나 엥겔스나 레닌이 생각했던 그런 맑스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계급적인 독재가 아니라 개인적인 독재입니다. 완전히 철저한 이기주의적인 개인적 독재입니다. 그 점에서 공산주의는 비록 계급적이지만 집단주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 그런 독재였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공산주의가 너무나 변질된 것 같은 감을 주지만 그 뿌리가 공산주의에 있고 역시 계급주의적인 이기주의이고 계급주의적인 이기주의가 수령의 이기주의로 집중화 되었고, 그것이 더 나아가서 수령개인의 독재로 집중되었다고 하는데서는 역시 김정일 정권은 공산정권이고, 본질상 그래서 공산독재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김정일의 독재의 정체성은 개인이기주의적 수령독재라는데 있고, 그것이 실패한 원인은 공산독재를 철저한 군사독재로 만들고 개인독재로 만들었다는데 그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를 희생시키고 모든 것을 독재기구를 강화하는데 바쳤기 때문에 이러한 비극이 있었고 실패하였습니다.

    한국의 독재와 북한의 독재는 천양지차

    여기에서 우리는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독재시대가 있었다, 그 독재시대는 북한의 독재와 같은 것처럼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8.15직후부터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기초를 잡아놓은 그것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길이었는가, 계급주의적 독재의 길이었는가?

    계급주의적 독재의 전형은 신분제도에 기초한 봉건왕권제도입니다. 사회주의 독재는 사실상 계급을 없이한다고 하면서 철저한 계급주의적 독재를 실시했습니다. 계급을 없이하기 위해서는 계급적인 독재를 더 강화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북과 남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북은 처음부터 독재고 남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입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입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 강제적인 방법, 전형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서 민주주의가 뒤떨어진 점이 한 때 있었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마치도 북한에서 있는 독재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한국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였고, 다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일정한 독재의 형식을 취한 점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 시기를 대표적으로 들어 봅시다. 독재라고 하는 것은 본질에 있어, 공권력 즉 국가 정권을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이기주의에 복종시켜서 이용할 때, 그것이 독재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강제적인 방법, 폭력적인 방법과 기만의 방법에 의할 때 그것이 독재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기 와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개인 이기주의가 없었습니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향하였습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발전을 지향하는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서 강제적인 방법이 적용되었다, 그 뿐입니다. 그러면 강제적인 방법에서 김정일이나 김일성의 독재하고 비슷하기나 한가, 강제적인 방법 자체에서 비슷하기나 한가, 전혀 다릅니다.

    김정일 독재에서는 한 군 내에서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모든 가정에서 자기 친척들이 와도 자고 가지도 못하게 되어있었는데, 선거의 자유가 있습니까, 무슨 재산권에 대한 자유가 있습니까,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까.

    여기서 남한에서의 강제라고 하는 것은 자유를 좀 제한 것이지 자유가 전혀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을 왜 같이 봅니까. 자유를 제한한 것 하고 자유를 전혀 주지 않은 것 하고는 다릅니다.

    우리는 소련 독재도 겪어 봤고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도 겪어봤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제로 생활체험을 하지 못한 것은 히틀러식의 나치통치 뿐입니다. 나치 독재의 문건들을 봐도 그 때 상점이 없었는가, 그 때 자유로운 상인들의 활동이 없었는가, 재산권이 없었는가. 그 유태인들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는 심한 독재가 있었지만 독일 국민 자체에서 김정일과 같은 독재가 실시되었는가,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동구라파의 루마니아와 대비도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김정일의 개인이기주의적인 독재는 유래 없는 것입니다. 그 많은 것을 예로 들 이유가 없습니다. 두 가지만 사실만 들어도 됩니다.

    하나는 해방직후부터 계속 소련식 독재를 악화시키는 일로를 걸어왔다. 봉건화하고 개인화하는, 그런 악화하는 길을 걸어서 저렇게 천양지차를 가져왔습니다. 둘째로서는 옆의 나라인 중국이, 그 전에는 북한의 경제발전을 상당히 부러워하였는데,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나가면서 25년 이상 계속 북한도 개혁개방으로 나가자고 권유하였는데, 김정일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얼마를 가서는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도 천양지차를 가져왔다. 이 두 가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김정일이 얼마나 철저한 개인이기주의자인가 하는 것을 실증해줍니다.

    그래서 그는 개인이기주의자, 철저한 이기주의자였고, 그것을 역사상 유래 없는 폭력적인 방법과 유래 없는 기만의 방법으로서 이것을 관철시키고 그 결과로서 자유를 말살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빌어먹은 나라로 전락시켰습니다.

    자유의 제한과 자유의 박탈은 전혀 다른 것

    이와는 반대로 박정희 시대는 다만 강제적인 방법으로 일정한 정도 자유를 제한하였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는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자유에 대해서 말한다면, 후진국가가 선진국가를 따라 갈 때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것은 발전하려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기 위해서 삶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유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더 사치하기 위한 욕망, 더 놀고 싶은 욕망,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욕망, 이런 삶의 욕망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가보다도 더 절약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이렇게 함으로서만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삶의 욕망을 일정한 정도로 제한하는 것은 뒤떨어진 나라의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가 뒤떨어져 있는 학생이 앞서 나간 학생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놀러 가자고 해도 놀지 말아야 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그것을 거절하고 밤새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역시 삶의 욕망을 일정한 정도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떨어진 나라에서 빨리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선진국가와 같은 자유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빨리 발전하기 위해서 일정한 자유를 제한하여야 합니다. 또 일반적인 민주주의적인 수준이 낮은 조건에서는 역시 자유를 제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할 때 부모들이 좀 욕을 하고 때리는 한이 있더라도 예방주사를 맞게 하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것입니다. 물놀이 하다가 빠져 죽을 수도 있는 것을 모르고 자꾸 강가에도 들어가고 바다에도 나가는 것을 못나가게 하고 제한하고, 그 제한이 조금 과하다고 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이 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 하나만 보고서 독재다, 독재다 하는 것은 아주 천박한 생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무슨 몇 프로는 좋았고 몇 프로는 나쁘다 이렇게 양적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남한에선 처음부터 자본주의 길을 걸었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길을 걸었는데, 일정한 시기에서 자유를 좀 제한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북한의 이기주의적인 독재하고 같이 볼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점을 우리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북민주화 정책과 햇볕정책

    다음은 한국의 대북 민주화 전략이 무엇인가, 북한의 대남 전략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민주국가인 만큼 대북정책도 어디까지나 북한을 민주화하는 전략입니다. 민주화하는 전략에서는 기본이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독재에 희생되고 있는 북한 인민들, 북한 주민들을 도와주고, 각성시키고, 그와 통일을 강화해 나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북 민주화 전략입니다.

    엄격하게 민주주의적인 원칙에서 볼 때, 국가와 사회의 주인은 인민입니다. 정권은, 좋은 정권의 경우에도 인민의 위임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지 정권 자체가, 대통령 자체가 인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민이 인정하는 한에서, 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에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 주민을 굶어 죽이고 온 나라를 감옥으로 해서 죽이고 탈북자를 만들어서 죽이고 이렇게 해서 모든 권리를 다 빼앗고, 자기의 노예로 만드는… 사실상 노예지요, 북한 사람들 사실상 노예입니다, 난 사실상 거기서 고급한 직위에 있었지만, 노예에 불과했다고 하는 데는 나 자신이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좀 고급노예였고 아래 사람들은 좀 직위가 낮은 노예였지요. 나나 그들이나 다 같이 노예라고 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걸 구별해야 합니다.

    북한의 주인을 노예화하고, 주인에게 복무하여야 할 통치자는 오히려 노예주의 역할, 지위를 차지하고 남들을 노예화 했다, 이것을 구별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구별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서 그것을 구별하는가, 원칙적인 입장은 철저하게 독재자와 독재에 희생되어 있는 주인은 구별해야 한다, 독재자는 반대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방향에서 노력하고, 희생되어 있는 주인인 인민은 도와주고, 각성시키고, 우리와 통일단결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하는 것, 이것이 옳습니다.

    이것을 해 나가는 데 역대 우리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것을 능숙하게 하지 못했다는 결함을 범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볼 때 그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북한 동포들을 옹호하였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옳습니다. 거기서 능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가지고서 또 자꾸 비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햇볕정책

    그런데 이것이 햇볕정책으로 변화되면서 이제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북한 통치자들에게 햇볕을 비추어 주어서, 혜택을 줌으로써 그들을 스스로 독재체제를, 독재의 옷을 벗게 한다 그 말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독재의 옷을 벗게 한다, 독재체제를 녹인다, 그것입니다. 독재자에게 혜택을 주어서, 빛을 주어서, 따사로운 것을 주어서, 혜택을 주어서, 독재의 옷을 벗게 하며 독재체제를 녹인다 이것이 햇볕정책의 본질입니다.

    독재자들과 공조를 한다, 민족적으로 공조를 한다? 김정일 독재정권은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을, 2300만 주민들을 굶겨 죽이고 감옥에 넣어서 죽이고 군대에 십년, 13년을 두어 두면서 역시 살아있는 채로 산송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최대의 민족반역자인데 민족반역자하고 공조한 자들도 역시 민족반역자 축에 드는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자로 될 수 있겠습니까. 애국자로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햇볕정책 주장자들은 그것이 마치도 애국적이다, 김정일과 민족공조를 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멀리하고, 이것이야 말로 애국적이다, 애족적이다, 이 방법이 독재의 옷을 벗게 하는 방법이고 독재체제를 약화시키고 거기다 자유민주주의를 심어주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국민을 기만하고, 흑백을 전도해서 하는 사기꾼, 파렴치한 사기꾼들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정일이 독재자인가 아닌가, 김정일의 독재에 의해서 북한주민들이 희생되고 있는가 아닌가, 이것부터 따지면 됩니다.

    거기다가 그런 독재자, 북한의 2300만을 굶주리게 하고, 굶어 죽게 하고, 감옥에 들어가서 죽게 만들고, 모든 권리를 다 빼앗고, 정신마저 빼앗긴, 이 자하고 민족공조를 한다는 것이, 옳은 공조입니까? 그 민족반역자를 지지하고 동맹자인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충실한 사람들입니까? 아니지요. 잣대가 명백하다고 봅니다. 무슨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따져 봅시다.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과연 달라졌는가? 김정일이 독재의 옷을 벗었는가? 아니지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김정일 독재정권은 반대로 더욱 튼튼해 졌습니다. 여기서 자꾸 주기 때문에 옷을, 자꾸 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핵무기를 더 많이 개발하고 무력을 강화하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남한의 민주주의 옷이 강화되었습니까? 오히려 여기서는 옷을 벗은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민주주의의 옷을 벗고 독재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김정일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아졌는가? 이 사람들은 민주주주의의 옷을 벗고 독재의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위 6.15공동선언 채택 5주년을 계기로 해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년학생들이 68%이상이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한다면 북한 편에 서서 미국에 반대해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민주주의 옷을 벗고서 독재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햇볕정책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햇볕정책의 기만성이 이렇게, 오늘 시간이 없어 그 기만성을 다 이야기 할 수 없는데, 아 기만성이란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얼마나 기만적인가? 25년 이상, 옆의 나라에서, 그것도 인구가 많은, 13억이나 되는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해서, 북한과의 차이가 천양지차이로 되었는데, 계속 그 사람들이 주장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개방마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 김정일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자꾸 그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변화된다고 하는, 이 이상 더 거짓말이 어디 있겠는가?

    퍼다 주기 결과 이렇게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진보인가 퇴보인가, 민주주의인가 반민주주의인가를 가리는 기준은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의 독재정권을 좋다고 보는가 나쁘다고 보는가, 햇볕정책을 좋다고 보는가, 나쁘다고 보는가, 이 잣대면 전부입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변명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두 가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면 됩니다. 또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는 자와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자와 같습니다. 한 부류에 속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고, 또 오늘에 와서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그런 기로에 서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될 것을 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가만히 두면 김정일 정권은 그저 5년도 못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햇볕정책 때문에 오히려 여기가 더 위험해졌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여기 남한으로 와서 남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려주고 힘을 합해서 빨리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생각했고 또 간단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햇볕정책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더 강화되고, 김정일 정권이 더 강화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늘과 같이 믿고서 온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좌파반미적인 친 김정일 정권이 더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에 와서는 북한을 민주화하는 문제보다도 남한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탈북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의 대남전략

    그러면 북한의 대남전략은 무엇인가. 시종일관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인민에 대해서 독재를 실시하는 대내정책을 수행하는 정권이 다른 외부 사람들에는 대해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대외정책을,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이지요, 수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북한 동포들을 잡아 죽이고 굶어 죽이고 하는 독재정권이 여기 남한 동포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다음에 여기 간부들에게 송이버섯을 보내고 자꾸 선물을 보냈어요, 풍산개를 보내고 자꾸 그랬는데, 뭐 고와서 그랬겠는가? 이뻐서 그랬겠는가. 거기 최고위 간부들에게도 안주는 선물을 여기다 자꾸 보내는데, 그것이 고와서 그랬겠는가.

    지금 김일성대학에 종교과를 세운 것이 진짜 종교를 퍼뜨리기 위한 것인가. 철두철미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여기를 적화하기위한 것이지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이것 단순하지 않은가. 자기가 통치하는 인민을 굶겨 죽이는 사람이 자기가 통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겠는가. 사실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적대시해서, 계급적 원수라고 해서 무자비하게 6.25전쟁 때도 죽이지 않았습니까? 다 기만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는가.

    그들의 대남전략은 그렇기 때문에 본질상 여기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제도를 말살하고, 그래서 남한 인민들도 독재 하에서 통치하자는 것밖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본은 여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제도를 적대시 하는, 말살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남전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 일정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저하게 폭력에 의해서, 군사력에 의해서 남쪽의 자본주의 제도를 타도하는 것, 그리고 여기 사람들을 기만해서, 소위 말하는 미국을 반대하는 통일전선전략으로서 여기 사람들을 기만하자는 것을 보조수단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가게 되면서 한반도에서 절대로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제정세가 조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대남전략에 있어서 순서가 달라졌습니다. 전쟁의 방법을 뒤로 미루고, 기만의 방법, 사기의 방법으로 남한에 좌경ㆍ용공ㆍ반미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나가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서 확고한 자기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남침전쟁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북침전쟁은 가만 안 있겠다. 그러나 남침전쟁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 맑스레닌주의를 지도사상으로 한 그런 어떤 단결, 통일, 이런 것, 우리는 승인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맑스레닌주의를 가지고서, 또 북한의 어떤 사상적인 문제를 가지고서 회의를 한다, 뭐 이런 데 일체 참가 안 하겠다.

    사실 중국은 이런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자기네는 자기식으로 개혁 개방의 길을 나간다. 이때부터 김일성 김정일의 대남전략은 군사적으로 하는 것은 배경에서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그 대신 기만과 사기의 방법으로서, 남쪽에 좌경ㆍ용공적인 정권을 세우는 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한에 지하당도 더 정수분자로서 소규모로 꾸리고, 북한 내부에서 공작원들, 특수부대를 더 많이 양성해서 남쪽으로 내려 보내서, 이렇게 파견된 10만 명 이상의 특수부대와 공작원이 힘을 합해서 남쪽에 친북적이고 용공적이고 반미적인 정권을 세우도록 하고, 우리 전쟁을 안 하고 평화적으로 했다, 평화적으로 우리가 힘을 합해서 연방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니 외부에서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이 미국 군대와 국가보안법입니다. 그래서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를 시종일관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입니다. 겨우 빌어먹어서 연명하는 상태이고 또 모든 것이 다 파괴된 그런 나라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모든 사람들이 직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주제에 오히려 한국에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그 주제에 오히려 여기가 파쇼적이다 또 뭐 어쩌고 하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우리 내부에서는 오히려 친북ㆍ반미 분자들이 계속 미국을 반대하고 김정일을 내세우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느슨하게 하지만 이것은 친북ㆍ반미 정권이 더 강화될수록 그 도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핵무기와 6자회담

    이와 관련해서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해서 옳은 견해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핵무기는 그 전에 벌써 개발되었습니다. 내가 알기는 그렇습니다. 핵무기는 그 전에 개발되었습니다. 특히 96년 이후에는 대대적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영변지구에 있는 옛날의 핵시설은 그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면 핵무기를 쓸 수 있는가. 전쟁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중국이 절대 반대합니다. 미국이 반대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 반대합니다.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데 핵무기를 쓸 수 있는가. 핵무기는 위협용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서, 여기에 친북ㆍ반미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하는 것, 이것이 더 엄중합니다. 그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핵무기, 핵무기하고 자꾸 이야기 하니까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김정일의 몸값만 자꾸 올라갑니다.

    핵무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핵무기를 휘두르면서 여기에 친북ㆍ반미 정권을 세우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는 결코 쓰지 못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핵무기 쓸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철폐하고 김정일의 독재정권을 세울 가능성은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이 인식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도 김정일이 북한에서 정권을 잡고 있기를 원합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에 들어가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김정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를 허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큰 나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여기 대해서 관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가지고서 외교관들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북핵 문제에 관한 6자회담은 안 된다고 했다가 또 타결되었다고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가 되풀이 되고 있는데 타결이 무엇입니까, 체면 차리기 위한 것이지.

    소위 6자회담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슨 논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서 김정일의 독재정권이 강화되었는가 약화되었는가, 아까도 이야기 하였지만 햇볕정책이 옳은가 그른가, 김정일 정권을 봐 준 게 옳은가 그른가, 이것들을 가지고 생각하면 됩니다. 6자회담이 성사되어서 여러 나라들이 만세를 부른다고 해서 김정일 정권을 약화되겠는가, 남한의 친북세력을 약화시키겠는가, 아니면 더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이런 잣대를 가지고 보아야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만족했다고 해서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대외정책이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안 할 뿐이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것을 잣대로 해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습니까. 햇볕정책 지지자들이 햇볕정책에 대해 중국도 지지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 이것은 기만이고 사기일 뿐입니까.

    핵무기만 포기하게 되면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겠다. 이것이 민주주의적인 입장입니까? 이것이 북한의 동포들을, 북한의 주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입장인가, 정치라는 것은 원칙만으로는 안 된다고 자꾸만 이야기 하는데, 핵무기만 포기하면 원조를 주겠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민주주의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핵무기만 포기하게 되면 원조를 주겠다, 6자회담에만 나오면 원조를 주겠다,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6자회담에 나올 자격이 없다, 이렇게 되어야 김정일이 혼이 나겠는데, 6자회담에 나오게 되면 원조를 주겠다, 그래서 자꾸 김정일의 몸값만 올려주게 됩니다.
    우리는 힘써서 무슨 6자회담을 비방하거나 핵무기 문제 때문에 우리가 달리 이야기필요가 없고, 핵무기 가진 것이 나쁜 것만은 사실이고, 그러나 핵무기를 가진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을 가지고 대선까지 간섭하고 나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무슨 핵무기를 포기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직접 그 무기를 이용해서 여기서 친북ㆍ반미정권을 세우자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더 큰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발전의 기본문제: 정신문화수준과 교육의 발전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한국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나서는 기본문제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이 발전하는데 있어서 기본문제는, 비상히 빠른 속도로 발전한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서 사람들의 정신문화 수준과 민주주의적인 정치문화 수준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그렇게 해서 빨리 발전할 수 있었지만, 외자도 도입하고 외국의 기술도 도입하고, 선진국가를 모방해서 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정신문화 수준이라는 것은 실제 공부를 안 하고 교육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제대로 발전 못합니다. 또 민주주의적인 정치문화도 상당히 오랫동안 투쟁하지 않고서는 정착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것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집니다. 뒤떨어졌기 때문에 그 보잘 것 없는 김정일의 사상적인, 정치적인 공세 앞에서 쩔쩔매지 않는가.

    우리가 여기서 자기 지도이념이 확고하다면 왜 김정일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확고한 정치적인, 민주주의적인 정치이념이 없다보니까 김정일을 숭배하는 청년들까지 자꾸 나오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한 단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즉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선진국가의 대열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의 정신문화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정신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을 고쳐야 합니다. 교육의 내용에 있어서 사상적인 교육이 없어요. 자기의 역사를 배워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것도 고치고 여기에 과학기술수준도 높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또 과학기술적인 면에서 앞선 선진국가를 따라 가야합니다. 그 경제 발전 수준은 사람들의 발전수준, 정신발전 수준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교육을 발전시키지 않고 이러저러한 요행수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근본적으로 교육의 내용을 고치고 교육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우대하고 교육자들을 우대하고 학생들의 생활조건과 학습조건을 개선하고, 이래야 됩니다. 또 사람들의 정신문화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중보도수단들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야 됩니다. 오히려 대중보도 수단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과업의 하나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을 그 무슨 조합에다 맡기고, 교사들이 생활수준을 높이는데 조합이 관계한다면 몰라도 교육내용, 사상교육 내용을 무슨 조합에 맡기고, 말이 됩니까. 교육은 정치의 기본의 기본인데 그것을 정권이 책임지지 않고 조합에 맡긴다, 말도 안 됩니다.

    정치문화 수준이 낮은 데 대해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근본적인 오류는 삼권분립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지만 통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철저하게 삼권분립을 강화해야 한다. 삼권분립의 밖에 대통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통일을 강화하고 미래를 위한 방향에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그런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서 지금 교육에서도, 교육의 실무적인 것은 삼권에서 하지만, 교육을 이제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하겠다, 교육자 과학자 기술자들의 대우를 잘 해주고, 학교생활과 학습조건을 개선하고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우리 인민들의 정치문화수준을 높여야 하겠다, 이런 것들은 대통령이 끌고 나가야 합니다. 지도이념, 민주주의적 지도이념을 우리가 교육해서 전체 국민이 애국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되겠다, 이것은 대통령이 끌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어느 장관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은 대통령이 끌고 나가야 됩니다.

    우리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도 전망성 있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자리,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늘리자면, 기업가들의 일자리부터 늘려야 합니다. 재벌들의 일자리부터 늘려야 합니다. 재벌들이 여기를 싫다고 해서 외국에 자꾸 자본을 수출하는 조건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습니까? 이것은 대통령이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서 이런 건설을 이렇게 확대해야 된다. 그래서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전에 재벌들의 재단들의 기업가들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 그런 기업을 마련해서 미래를 위해서 이런 것을 건설해야 되겠다, 그것은 어느 삼권이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해야 합니다.

    대북정책, 대북정책도 역시 원칙을 지키는 문제입니다. 대미정책, 역시 기본을 틀고 나가는 것, 국방력을 강하하는 문제, 역시 대통령이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이런 삼권분립의 상대적인 독자성에 간섭하는 대신에, 일원적, 삼권을 초월한 통일의 면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의 자격요건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지도자에 대한 견해를 똑바로 가져야 합니다. 지금 보게 되면 마치도 지도자가 아주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로 되는 것처럼 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또 능력이 자기 능력이 있다는 것을, 후보자들이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 이것도 할 수 있으니까 날 지지해 주시오, 난 이것도 할 수 있으니까 날 지지해 주시오. 이런 생각이 시대착오적입니다.

    봉건시대라면 왕을 잘 고르면 일이 잘 되었습니다. 지금은 근본적인 것은 국민자체가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이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지도자는 국민의 지혜와 열정을 동원해서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전문가입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군인 출신의 정치가인데, 애국심이 강하고 투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현대화를 해야 하겠다, 이 노선을 끝까지 끌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이지만, 율곡 선생이 무슨 군사전문가입니까. 그 때 율곡 선생을 병조판서로서, 지금의 국방장관 격인데, 임명했다고 해서 반대파들이 군대의 군사도 모르는 선비를 임명했다고 했는데, 율곡 선생은 애국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랑캐들의 반란도 진압할 수 있었고, 특히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십만양병설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 만약에 그것을 옳게 받아들였다면 임진왜란에서 참혹한 것을 면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꾸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본 사람이어야 하고 모든 경험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을 존중히 여기고, 국민을 존중히 여기고, 당의 지위를 발동시키고 국민의 지위를 발동시켜서 원칙을 고수하고 법 앞에서 겸손하고 국민 앞에서 겸손하고, 그러나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은 표 수나 바라는, 중도적인 것을 자꾸 주장하고 햇볕정책도 좀 어떻게 기웃거리고, 이런 사람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왜 중도인가. 중도적인 입장이란 것은 가장 나쁜 입장입니다. 그야말로 기회주의적인 입장입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애국적이고 애족적이고 애민적이고 민주주의적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지요, 인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지요. 그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중도적이니 뭐니 하고 말을 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우리 한국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지키며, 애국적이며 애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는 사람, 법을 존중히 여기고, 인기주의적으로 자꾸 법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법을 존중히 여기고, 삼권분립을 존중히 여기고, 이러한 지도자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지도자고, 또 우리가 선택하여야 할 지도자를 하늘에서 떨어질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양성하고, 키워 나가고, 그것도 역시 국민의 임무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선택의 기회는 우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김정일이 승리하는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하는가 하는, 아주 우리 인민의 운명에서 결정적인 이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절대로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명백한 입장을 취해야 된다. 뭐 햇볕정책을 반대하지만 난 그것을 이용하겠다, 이런 떨떨한 소리들 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중도적인 정치다, 이런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명백해야 합니다. 김정일이 나쁘고 햇볕정책이 나쁘고, 이 입장이 명백해야 합니다.

    결국 이 투쟁은 김정일이 승리하는가, 좌경ㆍ용공분자들이 승리하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자들이 승리하는가 하는 판가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 아주 명백해야 합니다. 색깔이 명백하지 않은 그런 입장을 우리가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