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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회평 논설위원이 쓴 <공직비리의 ‘숨은 규칙’>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뇌물사건이 경쟁하듯 터져나온다. 사상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제이유, 새롭게 뜨고 있는 탄현 주상복합 로비의혹으로 시끄럽다. 식어가던 바다게이트는 여당 의원 연루설로 부활하고, 교사들이 참고서 채택 대가로 리베이트 20%의 뇌물을 챙긴 사건도 재연됐다. 공직자가 도처에 등장한다는 점이 공통이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공직부패만은 줄어들 것으로 모두들 기대했다. 정권창출 세력들 스스로 ‘깨끗한 피’를 자부했고 부패척결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년 가까이 흐른 지금 부패의 탁도(濁度)는 예전보다 더하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7일 발표한 ‘2006 세계부패 바로미터’조사에서도 국민의 86%는 정부의 반(反)부패 정책에 부정적이었다. 한마디로 실패다.
‘신임관리 부패의 법칙’‘청백리 도태의 법칙’이란 게 있다. 중국 저널리스트 우쓰가 중국 사서에 나온 사례에서 도출한 관계(官界)의 ‘누규(陋規)’ 즉 ‘숨겨진 규칙’이다. 새로 부임한 관리는 현지의 아전과 토호들이 결탁해 유지해 온 ‘수탈 시스템’에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얼마 안가 동화되기 마련이다. 규정대로 하다간 업무를 추진할 재원 확보조차 어렵고 승진에 필요한 예의도 갖추지 못해 무능한 관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경서에 나오지 않는 현실의 논리를 배우면서 ‘진짜’ 관리가 되는 것이다.
반면 청백리가 되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뇌물로 결탁하면 서로 이익이 되지만 이에 맞서는 건 용기가 필요하고, 이는 곧 조직 전체와 대결을 뜻한다. 청백리는 대개 영광스럽게 희생되어 껍데기 모범으로만 남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줄을 잇는 교도소행은 신임관리 부패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7월 임기가 시작된 4기 단체장 중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사람이 벌써 여럿이다. 재직 중 수뢰 등 각종 위법행위로 기소된 단체장은 전체 248명 중 민선 1기 때 23명, 2기 60명, 3기 78명으로 급증해왔다. 권력을 쥔 자와 이권을 바라는 업자 간 불륜 중에서도 탄로난 사례만 그렇다.
부패의 ‘숨겨진 규칙’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질 때 힘을 발휘한다. 탄현의 경우 상가-주거 비율을 3대7에서 1대9로 조정하면서 사업성이 급등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당장 피해 볼 사람도 없으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만도 하다. 로비수첩은 그 흔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로비에는 단서가 붙는다. 실질적으로 혜택을 주면서도 뒤탈은 없어야 한다. 제이유 사건 등에서 등장하는 가족을 우회하는 수당지급, 차명통장을 이용한 로비, 투자형태의 이익배분, 목돈 빌려주기 같은 혐의는 새로운 형태의 거래 유형이다. 이런 경우 유죄 입증은 쉽지 않다.
굳이 금품이 오가지 않더라도 유착은 여러 단계로 존재한다. 경실련 집계에 따르면 주요 중앙부처의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73%가 퇴직후 유관 업체에 재취업하고 있다. 퇴직 후에 갈 기관이나 업체에 야박하게 굴 공무원은 드물다.
노 정권이 반부패 정책에 실패한 것은 유착의 고리를 끊기는커녕 되레 가담해 온 탓이다. 출범 초기 터져나온 최도술·여택수·안희정 등 ‘정권 공신’들의 비리 스캔들은 이 정권도 별 수 없다는 인식을 퍼뜨렸고, 이후 터진 비리사건에서도 청와대 참모, 대통령 친인척 등이 예외없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나 비리를 캐야 할 사정비서관이 비리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범법 여부를 떠나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청와대는 읍참마속의 전범을 보이기보다는 매번 감싸는 쪽을 택했다. 이런 정도는 괜찮다는‘지침’을 일선 공직사회에 은연중 제시해 온 셈이다.
공직자들도 1년새 수억원이 오르는 아파트 신화에 좌절하고 월급봉투째 사교육비에 쏟아넣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양심껏 공직생활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정권 상층부가 계속 비리에 연루되고 독직사건을 별 것 아닌 투로 여긴다면 ‘청백리 도태의 법칙’은 여전히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