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왕적 대통령’은 3권 분립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다른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강해 제왕의 지위와 비견됨을 비유하는 표현을 말한다. 요즈음의 자치단체장은 예산편성, 인사, 인·허가, 지역사업 배정 등 자원배분권을 독점하고 있어 사실상 ‘제왕적 단체장’의 권능을 누리고 있다.

    나아가 자치단체장의 직선이 4회에 걸쳐 실시되었고 지방정부 출범 후 11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관선 때 보다 못하다. 차라리 지방자치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자치단체장의 독단과 전횡에 대한 염증의 결과라 하겠다.

    성균관대 이명석 교수와 행자부 평호 사무관이 공무원(광역·기초 자치단체 4~7급)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뒤 한국부패학회보 제 11권 2호에 담은 ‘지자체장 인사부조리 실태에 관한 시론적 연구:지방공무원의 인식을 중심으로’란 연구논문을 살펴보자.

    이 논문에 따르면 ‘임명직 자치단체장 시기와 비교할 때 민선 이후 인사부조리가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악화됐다’(22.4%)와 ‘약간 악화됐다’(40.4%)는 의견이 62.8%를 차지해 ‘약간 감소했다’(15.4%)와 ‘매우 감소했다’(6.5%)는 의견(21.9%)보다 3배나 많았다.

    인사비리 수준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 9.2% ▲심각 16.5% ▲약간 심각 23.8%▲약간 부조리 존재 41.3% 등 부정적인 답변이 90.8%로 ‘깨끗하게 운영된다’(9.2%)는 긍정 답변보다 10배가량 많았다.

    ‘승진과 관련해 금품 제공이 필요한 경우 금액은 어느 정도로 알려져 있느냐’는 질문에 ‘필요 없다’는 대답이 51.0%였으나 나머지는 14.8%가 1000만~2000만원, 14.2%가 2000~3000만원, 10.4%가 3000~5000만원, 3.6%가 5000만 원 이상을 꼽았다.

    선거법 위반 사례도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 군수직을 상실한 기초단체장이 민선 1기 2명, 민선 2기 7명, 민선 3기 11명이었던 것에 비해 민선 4기에는 벌써 11명의 시장 군수 구청장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공직선거법 위반 시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았거나 사직했다. 그러나 이들 외에 30여 명이 1심 재판에 계류 중이거나 수사를 받고 있어 자리를 잃을 단체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동아일보 2006.11.13)

    왜 갈수록 지자체장들의 인사부조리와 선거법 위반사례가 증가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제왕적 단체장’의 권한 때문일 것이다. 권력집중은 지방 공무원의 줄서기와 승진 인사시 금품제공으로 이어지고, ‘당선되고 보자’는 생각 앞에 선거법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가 ‘통법부’라는 오명을 씻고 권력분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대통령제로 가든지 의원내각제로 가든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는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자체도 제왕적 단체장의 권능을 분산하는 관행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권한분산에 대한 단체장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방의회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여 변화의 주체로서 군정을 리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도 시급하다. 지역 NGO들의 지역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과 자치단체에 대한 감시활동도 본격화 돼야 할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정당의 중앙당은 지방선거 때 후보자를 공천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방정치나 정책에 관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도당은 도의회 의장 선출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정도가 지방의회 의장 선거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향후에는 자치단체의 인사 비리나 선거법 위반사례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중앙당 차원의 클린 활동이 뒤따라야 한다. 단체장이 인사권을 남용하고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되는 경우에는 적절한 문책은 물론, 다음 공천에 반영하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등 지자체의 운용 전반에 대한 개혁방안과 상시 감시활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치단체장의 권한분산에 따른 ‘리더십의 위기’는 주민들에 대한 봉사정신과 책임성, 청렴성과 도덕성이 평가받을 때 자연스럽게 극복될 것이다. 단체장들이 지역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방행정을 편다면 공천시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는 수고도 덜 수 있을 것이다. 민심보다 더 큰 원군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