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이 쓴 '평화세력과 전쟁세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6일 국회에서 한명숙 총리가 대독한 ‘2007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평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제기된 전쟁불사론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반드시 북한 핵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 수단은 난관에 부닥치고 있으니 과연 노 대통령이 언급한 ‘전쟁불사론을 제기하는 일부’는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풀 단서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정계개편 주장에서 엿보인다.

    김 의장은 모든 ‘평화세력’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면서 ‘비(非)한나라당 세력’의 결집을 제창했다. 이 말은 한나라당은 평화의 반대개념인 전쟁세력이고 자신들은 평화세력이라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과연 한나라당이 문제의 그 ‘일부’일까.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전쟁불사론이 한나라당의 공식 정강정책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요즘 뜨고 있다는 이른바 대선 후보 ‘빅3’의 입에서도 그런 말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하게도 ‘전쟁 불사론’은 열린우리당이나 친정부 관련 인사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여당 주변 인사들의 입에서는 ‘그러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의 대꾸가 입버릇처럼 나온다. 몇번이나 터져나왔는지를 꼽아볼 필요도 없다. 북핵 대책을 따지는 자리, 논의하는 자리라면 으레 나온다. 그 ‘일부’는 바로 정부·여당과 그 주변 인사들인 것이다.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라는 말은 물론 ‘전쟁불가(不可)론’을 강조하는 역어적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반문은 대개 상대방이 전쟁을 상정하지 않았는데도 튀어나온다. 북핵 위기를 해소하려면 좀더 강경한 메시지를 북에 보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이들은 대화의 단계를 뛰어넘고 논리를 비약시켜가면서 ‘그렇게 하면 전쟁이 터진다’고 우긴다. 그러니 ‘전쟁불사론’, 곧 ‘전쟁발발론’은 ‘전쟁불가론자들’의 입술에서 만들어진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혹시 누가 지금까지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이제는 햇볕이니 포용이니 하는 당근보다는 압박과 제재라는 채찍을 들 때라고 말했다 치자. 그러면 그들은 당장 벌떼처럼 일어나 ‘그러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고 대들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핵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비원(悲願)을 순식간에 ‘전쟁 희망론’으로 둔갑시키는 게 이들의 숨은 재주다. 김정일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들이 먼저 설치는 게 또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전쟁불사론’은 미국 싱크탱크들의 책상 속 깊이 간직된 북핵 위기 해소 시나리오에는 물론 들어 있다. 김정일이 끝내 핵 폐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무력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는 수시로 언론에 흘러나온다. 김정일도 그 존재를 다 안다. 이 시나리오는 실현될 수도 있고 그냥 종이호랑이로 남을 수도 있다. 마치 북측이 남북대화가 잘 안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줄 알라고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위협은 실현될 수도 있고 단순히 공갈로 남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한 압박수단을 곧 전쟁 발발의 촉매로 몰아가는 행태는 정략적 프로파간다의 성격이 짙다. 노 대통령이 말한 ‘일부의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 김근태 의장이 주장한 ‘평화세력 단결론’이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왜 이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절절 매고 있는가. 그것은 평화는 좋고 전쟁은 나쁘다는 단순논리의 선전술과, 평화를 애호하는 쪽은 노무현 세력, 전쟁을 좋아하는 쪽은 비노무현 세력이라고 세뇌하는 저들의 언어 헤게모니에 알게 모르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속이 오래가면 결국 북한에 핵보유의 길을 열어주는 천추의 한(恨)을 남길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