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 사설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쁘다. 지난 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김 전 대통령은 하루 걸러 언론 인터뷰, 다시 하루 걸러 대중강연이란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9일부터 23일 사이에 4번의 강연, 4번의 인터뷰를 했다. 4번의 언론 인터뷰는 모두 외국 언론을 상대로 한 것이다. 80년 정치 재개 직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정이다.
23일 한양대 최고위 과정 초청연설에선 “지금 남북관계는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전에는 판문점에서 총 몇 방 쏘면 피난 준비했으나 북한이 핵을 만들었다고 해도 끄떡안한다” 고 말했다. 2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선 “북한은 유엔 경제제재에 대응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며 군사력으로 제재를 물리치려 할 수 있다”고 했다. 19일 서울대 강연에서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왜 부시 대통령만 북한과 대화를 못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1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축사, 16일 게재된 미 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뷰, 14일의 미 CBS 방송 인터뷰, 같은 날의 영국 로이터 통신에 실린 인터뷰, 그리고 11일의 전남대 초청강연의 내용도 大대동소이하다.
현재의 북핵사태에는 미국에도 책임이 있으며, 햇볕정책은 큰 성과를 거뒀고, 북한을 제재하면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여기에다 “북한 핵실험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은 절대 빼먹지 않고 있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이야기의 비중은 미국 책임론 쪽에 가 있다.
따지고 보면 김 전 대통령의 이런 캠페인은 북한 핵실험 다음날인 10일의 청와대 전직 대통령 오찬에서부터 시작됐고 다음날 아침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포용정책이 죄가 있는가. 포용정책은 남북긴장을 완화했을 뿐 악화시킨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발언한 것으로 본격화됐다.
김 전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노 대통령에게서 “전적으로 동감이다. 어제 불편하게 했던 일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참모회의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냈고 이를 경계로 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와 공동보조를 취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던 입장에서 ‘한국적 해결’이란 국제 고립의 길로 다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나라 사정은 국민이 보는 바와 같다. 국제사회와 공동보조를 취한다고 해놓고선 그걸 협의하기 위해 동맹국의 주무 장관이 방문했는데 바로 옆에서 당정 수뇌부인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집권당 의장, 집권당 원내 대표들이 모여 ‘북핵은 우리 식으로’를 다짐했다. 집권당 대표가 국제 관심이 쏠려 있는 개성 사업장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만화 같은 장면도 벌어졌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대한민국이 동맹국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어느 동맹국이 이런 대한민국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는가.
이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하루가 멀게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 목소리 쪽으로 일부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원로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그 일리를 건지기 위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가 위기에 나라의 중심에 서야 할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