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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북한 핵실험으로 혼란스런 와중에서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우리 시간으로 14일 새벽 총회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제18대 유엔사무총장에 공식 선출되었다. 이에 따라 반기문 차기 유엔사무총장은 내년 1월 1일자로 5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과거 유엔의 도움으로 파멸 직전의 나라를 구했고, 한때 유엔 가입이 국가적 대업(大業)이었던 우리가 유엔에 가입한지 15년 만에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 배출이 우리 외교사의 크나큰 경사이자 국민에게 자긍심을 주는 쾌거(快擧)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단순한 기쁨보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류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노선 때문이다. 유엔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넘겼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적 수준의 민주국가로 발전했으며, 유엔 재정 기여도에서 11위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서 10위를 차지할 만큼 유엔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북한의 무모한 불법행위와 노무현 정부의 무리한 폐쇄적 외교노선으로 인해 새로운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반 차기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 수장으로서 북한 인권문제와 대북 제재문제의 처리에서 유엔의 입장과는 상반된 입장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우려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유엔사무총장이란 자리는 대외적으로 유엔을 대표하고 유엔의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의 수장이자 국제사회의 분쟁과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반 차기 총장이 직면한 문제는 적지 않다. 유엔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유엔 개혁 문제, 중동문제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불안, 지구적 차원의 빈부격차와 인권문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테러 및 위폐 제작 등의 범죄활동과 같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반 차기 총장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가 북한 핵실험으로 혼란스런 와중에서 반 차기 총장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반 차기 총장이 노무현 정부의 최일선에서 정권의 이익 확보에 충실했던 입장에서 지향점이 일부 다른 유엔의 목적에 충실한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입장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와는 달리 반 차기 총장에게는 평화와 번영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엔의 입장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불법행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책무가 주어졌다. 이제 반 차기 총장은 자신이 이들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반 차기 총장의 역량과 역할을 통해 북한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자리이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맡은 바 소임을 잘 이행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유엔헌장은 사무총장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떠한 정부나 단체로부터 지시를 구하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은 반 차기 총장이 이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입장에서 정도(正道)를 걸어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우리 정부도 유엔사무총장의 임무와 성격을 존중하고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된다. 반 차기 총장의 역할을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정권 이익의 연장선으로 활용하려 해서도 안된다. 반 차기 총장이 유엔의 수장으로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반 차기 총장의 탄생을 계기로 우리 외교의 지평을 한층 넓히고 보다 성숙한 외교를 수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전제는 국제사회의 큰 흐름에 동참하는 외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족 우선의 폐쇄적 외교에 얽매여서는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상실할 뿐 아니라 반 차기 총장의 역할에도 장애가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 우리 정부는 유엔 외교의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우리나라가 유엔에서의 발언권이 대단히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올해까지 아홉 번째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맡았으며 현재 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단 한 번뿐이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국제적으로 다자외교의 효용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의 다자기구인 유엔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 증진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유엔 외교의 강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담당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에 대한 재정 기여 증대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한 적극 참여를 위해 힘써야 한다. 북한에 대해 무분별하게 제공하고 있는 자금의 일부라도 유엔 외교의 강화에 투입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외교력을 더욱 배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북한문제의 효율적 해결을 앞당기고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외교력은 가장 중요한 국력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반 차기 총장의 유엔 수장으로서 정도(正道)를 추구하는 역할과 역량을 통해 우리 외교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평화통일을 위한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