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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3일자 오피닌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FTA 국민보고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중론’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1970년대 초였다. “학생운동권에서 수용되기 시작한 민중이라는 개념은 민중·민족·민주선언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됐다… 민중론이란 민중을 역사발전의 주체로 파악하는 논리체계이다.”(김인걸 외 ‘한국현대사 강의’)
식민지 내지 종속 등의 개념은 1980년대 진보·좌파 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한국사회 구성체 논쟁’과 관련이 있다.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로 파악할 것인가 등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용어들만 봐도 사회주의 이론의 교조적 수용이며, 소모적인 파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잊어진 추억인 줄로만 여겼더니 이런 철지난 정치·사회적 개념들이 다시금 한국사회의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달 10일 발간한 ‘한미FTA 국민보고서’가 그 장본인이다.
집필진으로 참가한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미FTA 저지투쟁은 제국통치령에 맞서 공화국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민중의 민주주의적 항쟁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한미 FTA는 미국계 초국적 자본, 그리고 이들과 융합돼 있는 내국 독점자본이 노동자 민중과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펼치는 전면 공격”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
“공화국 주권을 미 제국에 실질적으로 할양 양도하고자 하는 주권반환 협정의 성격”이라는 최 교수의 주장은 1964년 한일기본조약체결을 둘러싸고 벌어진 반대 세력의 구호인 ‘제2의 한일합방’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학생 운동권의 표현양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을 뿐아니라,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0위권의 한국경제를 마치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1940년대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흔히들 이념을 분류할 때 좌파는 진보와 함께 묶어 진보·좌파라고 호칭하지만 우리 사회의 좌파야말로 어느 집단보다 의식의 ‘진보’가 절실한 형편이다. 사유구조가 여전히 마르크스의 유령이 떠돌던 19세기나 20세기 초에 묶여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