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번째 미사일 개발국(1978) … 그게 바로 '백곰'박정희의 위대한 공로, 자주국방-중공업에 목숨 바쳐DJ "무명베옷 입고 차 없이 걸어다녀도 평등하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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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이경서 저《박정희의 자주국방》2023 ⓒ 이른아침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수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열여섯번째 책으로 이경서의《박정희의 자주국방》(2023, 이른아침)이 선정됐다. 필자는 김용철 한국전략포럼 연구위원.《박정희가 옳았다 : 5.16과 10월유신의 정치경제학》의 저자. 이강호란 필명을 사용한다.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차례 복역도 한 운동권 출신. 한때 마르크스-레닌주의자를 자처하며 이른바《사회변혁》이란 이름의 혁명운동에 몸을 담갔던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야말로 근대화를 이룬 진정한 진보 정치가"라고 그의 저술에서 평했다. 박정희로 상징 되는 독재체제를 뒤집어 엎겠다는 이른바《민주화 운동가》의 진솔하고 용기있는 자기 고백서로 주목받았다.======================= -
- ▲ 이란전쟁에서 한국 LIG넥스원의 중고도 요격미사일 천궁 II의 활약이 화제다. K9 자주포와 K2 전차에 이은 K-방산 대표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미사일의 급부상은 1978년 한국 최초의 미사일《백곰》에서 출발한다. 누가 뭐라해도 대한민국 미사일(유도탄)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 제미나이
■ 이란, 마구 쏘아댔지만…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합동 공습하면서 이란 전쟁이 발발했다.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원천 차단을 위해서였다.그 첫날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가 폭격으로 사망했다.37년간 신정 독재 체제로 철권통치를 하던 인물의 퇴장이었다.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압도적이었다.하지만 이란은 항복하지 않고 미사일과 드론을 쏘아대며 버텼다.그런데 미군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걸프만 일대 아랍 국가들 모두를 향해 마구잡이 공격을 했다. -
- ▲ 중고도 요격미사일인 천귱 II 발사 모습.ⓒ LIG넥스원
■ 천궁-II와 UAE이란의 난사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UAE)였다.UAE는 그에 맞서 방공망을 가동했는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확인됐다.한국에서 도입한 천궁-II(M-SAM2) 미사일이 요격성공률 96%의 경이적 위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UAE 정부는 한국에 천궁-II의 추가 배치를 긴급 요청했다.포대까지 추가 배치하는 게 어렵다면, 미사일 일부만이라도 긴급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곧바로 UAE의 수송기가 대구공항으로 날아와 천궁-II 미사일 30여기를 인도받아 갔다.로켓배송이었다.이런 가운데 UAE가 한국에 긴급히 대량의 원유공급을 하기로 하는 일이 이루어졌다.이재명 의 청와대는 그 모든 일이 마치 자신들의 주도적 성과인 듯 굴었다.기만적 생색 이었다.UAE와 한국의 긴밀한 관계의 출발은 이명박 대통령 당시인 2009년 UAE 원전사업을 수주하면서였다.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중동 건설 붐 시절 현대건설에 재직하면서 현장을 누볐던 인연이 있었다.UAE 원전 사업수주 성공은 그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한국은 UAE와 군사적 관계도 돈독히 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도 수립했다.중동국가들 중 최초이며 유일한 관계였다.2011년 UAE에 군사훈련 협력단(아크부대)을 파병하기도 했다.그런데 나중에 문재인 정권은 UAE 원전사업 수주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난리를 쳤다.이명박 정부와 UAE 정부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약속도 문제 삼아 양국 관계의 악화를 초래하기도 했다.UAE가 천궁-II 도입 계약을 한 것은 문재인 정권 말기인 2022년 1월이었다.그런데 당시 UAE 왕세제는 문재인 과의 회담을 돌연 취소했다.말할 것도 없이 불쾌감의 표시였다.UAE의 천궁-II 계약은 문재인 이라는 좌파정권의 성과가 전혀 아니다.UAE는 문재인 정권이 아니라 K-방산으로부터 자신들이 필요한 무기를 도입한 것일 뿐이었다.좌파들은 원전에 대해 그랬듯, 방산에도 늘 부정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북핵에 대해선 입을 닥치면서도 한국 방산의 확장과 발전에 대해선 민족 평화 통일 따위를 운운하며 끊임없이 시비를 걸곤 했다.K-방산의 성과에 좌파들이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 ▲ 백곰 미사일 개발 주역 이경서 박사. 한국 방위산업의 핵심 기술업체인 단암시스템즈 회장으로 재직중이다. 손해보험업계의 거물 단암 이필석 전 국제화재 회장의 둘째아들이다. 형인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은 하버드대 경제학박사로, 박정희 정권에서 동력자원부 장관으로 일했다. 석유쇼크에서 한국경제를 구출하는데 1등공신이란 평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추진에 두 형제 모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
■ K-방산의 출발은 박정희의《자주국방》K-방산의 오늘이 있게 한 출발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였다.특히 이번에 UAE를 통해 확인된 천궁-II와 같은 미사일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다.2023년 출간된《박정희의 자주국방》이라는 책은 그 지난한 역사를 보여준다.저자 이경서(李景瑞)는 1938년생, 88세다.현재 단암시스템즈(주) 회장이다.그런데 경력과 개인사의 이력이 간단치 않다.한국 방산의 역사와 거의 완전히 함께다.저자는 서울공대 기계공학과에 2년을 다닌 뒤 미국 MIT공대 3학년에 편입해 졸업한 뒤 박사까지 취득했다.이후 BBN((Bolt, Beranek, Newman)이라는 연구용역회사에서 3년간 재직했다.그러다 1969년 BBN을 퇴직하고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입사했다.KIST는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연구기관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은 파격적 혜택을 내걸고 외국에 나가 있던 한국인 과학자들 영입에 전력을 다했다.이 박사도 그 부름에 호응하게 됐다.■ 닉슨 독트린,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번개사업그런데 이 박사가 KIST 근무를 시작하던 1969년 닉슨 독트린 이 나왔다.“자국의 1차적 방위는 자국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한국은 중대하고 엄중한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한국은 아직 소총(小銃) 한 자루도 만들 수 없던 시절 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 방위를 모두 책임지라는 것인가?그럼에도 대응책을 찾아야 했다.국책연구기관 연구진의 입장에서는 더욱이 그랬다.이 박사는 말한다.“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1969년부터 박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까지,박대통령의 마지막 10년은 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는 활로 찾기에 오로지 집중되었다.”그리고 당시 이 박사 자신도 그 절절함 속에 있었다고 한다.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를 설립했다.자주국방을 위함이었다.그리고 1971년 11월 10일 ADD에 긴급 병기 개발 프로젝트를 지시했다.“연말까지 소총, 기관총, 박격포, 수류탄, 지뢰 등의 국산 무기 시제를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번개사업》의 시작이었다.1971년 11월 17일부터 ADD 연구원들은 번개사업에 매달렸고, 1개월만인 12월 16일 청와대에서 결과물들을 보고했다.기존 미군 무기의 모조품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것은,“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무기들이었다.”
ADD는 곧바로 2차 번개사업에 착수했다.1차 사업의 결과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그게 시작이었다.K-방산의 첫걸음은 그렇게 디뎌지고 있었다. -
- ▲ 1978년 9월 26일 백곰미사일 시사회(試射會)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국산 무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
■ 유도탄 개발 지시와 백곰 사업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12월 16일 제1차 번개사업 보고를 받은 열흘 뒤인 12월 26일 오원철 경제수석에게 또 하나의 특별 지시를 했다.《유도탄 개발》착수였다.1972년 3월 이경서 박사는 KIST에서 ADD로 자리를 옮겼다.임무는《유도탄 담당》이었다!이 박사는 책에서 박대통령이 오원철 수석에게 유도탄 개발 지시와 함께 써준 메모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제목은《유도탄 개발 지시(1971.12.26.)》인데 극비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방침>은 독자적 개발체제 확립과 함께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하되, 1단계는 1975년까지 국산화 목표를 명기하고 있다.이어 <추진계획>은 유도거리 200Km 내외를 명기하고 있다.평양까지의 거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이 박사는, 그 메모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이미 오랜 시간 유도탄 개발에 관하여 숙고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 한다.그리고 결론 내린다.“이는 우리나라의 유도탄 개발 계획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본인의 아이디어와 구상에서 처음 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착수된 대한민국 최초의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는《백곰 사업》으로 칭해졌다.그러나 표면적인 공식사업명은 비밀 유지를 위해《항공공업 육성계획》으로 했다.백곰 사업은 한국에 있던 미국 미사일 나이키 허큘리스의《복사》 작업을 기본으로 진행됐다.명칭 NHK-1은 나이키 허큘리스 코리아 1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하지만 쉽지 않았다.베끼는 것을 기본으로 했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한 만큼 그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나중에 사업 추진을 알게 된 미국은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미국의 관련 업체가 기술제공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미 국무부는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1977년 미국에 카터 정권이 등장하면서 갈등은 더 심화됐다.그런 만큼 “백곰의 개발 과정은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이었다.”1978년 4월경 백곰 미사일의 시험 발사가 시도됐지만, 연달아 실패 했다.그러나 연구원들의 피눈물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1978년 9월 26일 마침내 백곰 미사일은 최종적으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일곱 번째 미사일 개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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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 9월 26일 백곰미사일 시사회(試射會)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지워질 수 없다지금 천궁-II로 큰 주목을 받게 된 한국 미사일 역사의 시작은 그렇게 이루어졌다.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반기 10년 동안이었다.박 대통령이 있었기에, 그의 통찰과 의지, 그리고 강건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 이후의 발전을 지켜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바로 다음해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했다.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반세기의 세월이다.그동안 수많은 정치적 격변도 있었다.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지워질 수 없었다.그에 의해 시작된 자주국방과 공업화의 노력은 결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했다.저자는 그와 관련해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박정희 대통령의 18년 통치에 대한 공과는 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10년 동안 그가 추진한 자주국방에 대해서라면당시로서는 꿈으로만 여겨졌던, 장거리 전략 미사일 개발을 추진했던 나도 그의 자주국방의 철학을 공유했다고 자부한다.”“미군이 이 땅에서 철수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고, 북한의 야욕과 도발이 나날이 노골화되던 1969년부터 1979년까지,박정희 대통령의 유일한 목표는 자주국방에 놓여 있었다.이 시기는 우리나라의 중공업의 기틀을 다진 시기이기도 한데, 이 역시 자주국방과 무관하게 추진된 사업이 아니었다.자주국방을 위해 중공업이 필요했고, 중공업이 일어나야 자주국방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산업 전반이 함께 가는 강력한 산업생태계오늘날 한국은 세계적 경제강국이다.단순히 순위나 규모 차원이 아니다.질적으로 강력하다.반도체 산업 세계 최강국의 하나다.한국 없이는 세계 전자산업 생태계는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한다.그것만이 아니다. 한국은 조선, 자동차, 원자력 등 여러 기계공업 중공업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그리고 K-방산이 있다.천궁-II만이 아니다.전차, 자주포, 잠수함, 항공기 모두 탁월하다.폴란드는 유럽의 전통적 방산강국을 제치고 한국으로부터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을 대거 도입했다.한국 자주포의 세계 방산 시장 점유율은 52%에 달한다.가격 경쟁력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성능의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그런데 K-방산의 이 같은 경쟁력의 바탕에는 전자산업에서부터 기계공업 등까지 산업 전반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업생태계가 있다.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천궁-II의 놀라운 성능에는 한국 전자산업 능력의 탁월함이 있다.덧붙여 K-방산에는 우직한 괴력의 것도 있다.202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현무5 미사일이다.현존 세계 최강 미사일로 꼽힌다.8톤급 탄두를 장착해 마하 10의 속도로 타격해 지하 100m 이상을 관통해 폭파시키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전술핵 수준의 타격력으로 평가된다.사거리는 공식적으로는 300~600km 단거리급이지만, 탄두 중량에 따라선 3000~5500km의 사실상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급이라고도 한다.핵무기를 갖지 못하는 제한 때문에 오히려 그 대안을 처절한 노력으로 갖게 된 것이다.이 모든 성취의 출발점은 박정희 대통령이다.그리고 애국적 신념으로 헌신한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이경서 박사는《박정희의 자주국방》에서 그 지난했던 과정을 꼼꼼하면서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그리고 부록에선 백곰 개발 주역들을 소개하고 있다.약 800여명의 연구인력이 참여했지만, 그 모두를 담지 못함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표한다.그러나 그런 마음은 저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오늘을 누리고 있는 세대들이 표해야 한다. -
- ▲ 산업화 시작의 표상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에 드러누워 반대하는 이른바《민족민중경제론》 추종자들. 당시 YS-DJ를 비롯한 야당 전부와 조중동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은 우물안 개구리들이었다. 박정희의《수출경제-중화학공업화-자주국방》을 기를 쓰고 반대-폄훼-훼방했다. 무명베옷 입고 자동차 없이 걸어 다녀도 무조건 평등분배하면 된다는 유교적 사회주의에 찌들은 행태이다. ⓒ
■ 한국 좌파, “무명베옷을 입고 산천지를 걸어 다녀야” 마땅하지만 지금 이재명 정권과 좌파 정치 패거리들은 한국의 현재의 위상을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행세 를 하면서도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지난 시대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경의도 표하지 않는다.오히려 비난을 퍼붓고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 다.지금만이 아니다.예전부터 그랬다.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맞서 출마했던 김대중 은 미국, 중국, 일본, 소련 등에 의한《4대국 안전보장론》을 내걸고 "예비군 폐지" 를 외쳤다.《주변 강국에 의한 안전보장》이란 것은 세계 역사상 그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다.우크라이나가 그 경우다.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위해 고뇌와 분투를 하고 있을 때, 김대중 은 허황된 소리로 선동을 해댄 것이다.뿐만 아니라 김대중 은 겨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수출과 산업화에 대해서도 완전한 역행의 소리를 했다.박현채 가 대필한 그의 저서《대중경제론》에서 "수출은 대외종속만 심화시킨다" 고 하더니,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는 이렇게 외쳤다.“세종대왕 시대가 선군의 시대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울산공업 단지도 없었지만,우리가 선군의 시대라는 것은,비록 그 시대에는 무명베옷을 입고 산천지를 걸어 다녔지만, 국가의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었던 것이오.”만약 한국이 그 노선대로 가게 됐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어떻든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경제강국, 방산강국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그럼에도 그 헛소리의 주인공을 존경하고 그의 정치적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이라면, 선진국 대한민국과는 이별을 고하고, “무명베옷을 입고 산천지를 걸어 다니는” 게 마땅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