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김창균 칼럼'에 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양극화는 10년 집권연장의 발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앞으로 2년, 경제가 안 좋을 거야.”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불쑥 꺼낸 말이다. 대기업 간부의 경제 전망을 듣게 되나 했더니 뜻밖의 논리를 들고 나왔다. “생각해 봐. 서민들이 살기 힘들면 대선에서 어느 당을 찍겠어? 당연히 좌파 정당이지. 이 정권이 경제를 살리려 할 리가 없잖아.” 

    그럴듯한 음모론 같지만 전제에 무리가 있었다.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성공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이다. 정권 재창출은 그 다음 순서다. 단임 대통령이 소속 당 후보에게 정권을 물려주기 위해 ‘실패한 대통령’을 자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친구의 말 속엔 일면의 진실이 있다. ‘서민들이 살기 힘들면 좌파 정당을 선택한다’는 부분이다. 좌파 정권은 일부러 서민 경제를 어렵게 만들지는 않더라도, 어려운 서민 경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소지가 있다. 요즘 정권 핵심부에서 들려오는 말 속에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난다.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다른 국정 분야는 다 괜찮다면서도 “양극화 현상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 다음 말이 의미심장하다. “지금 제도로는 10년 뒤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지난 연말 여당 대표가 했던 말이 대통령 의중을 풀어 설명해 준다. “다음 대선에서 우파가 집권하면 부자 2%만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다. 그건 역사의 후퇴며 재앙이다. 우리가 10년 더 집권해야 한다.” 

    두 사람 말을 합쳐 놓으면 여권이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드러난다. “양극화는 제도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권을 10년 더 맡겨 주면 해결할 수 있다. 반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2% 강남 사람들만 더 잘살게 된다. 이래도 여당을 안 찍겠느냐?” 

    작년 4월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현 정권이 신 자유주의에 함몰돼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만난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 교수의 질책을 듣고 나니 2007년 대선을 치를 전략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양극화 문제만큼 한나라당과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양극화를 걱정하며 나서는 정권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대선이 가까울수록 점점 양극화 얘기를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권엔 양극화를 해소할 방책이 있다는 말일까. 정말 그렇다면야 10년 더 정권을 못 맡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런 궁금증이 최근 ‘진보좌파’ 학자들의 토론 과정에서 풀렸다. 한 참석 학자는 “양극화가 심화되면 좌파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집권 후가 문제다. 양극화를 해결할 정책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이 좋은 예”라고 했다. 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라는 정치 구호만 있지, 구호를 뒷받침할 정책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고소득층 20%와 저소득층 20%의 소득비율은 2002년 5.18, 2003년 5.22, 2004년 5.41로 서민을 위한다는 이 정권 들어 소득 불균형이 오히려 심화됐다. 또 ‘강남 집값 때려잡기’에 총력을 쏟은 지난 한 해 ‘강남 중의 강남’인 압구정동 아파트값 증가율이 40%로 가장 높았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토론에 참석한 또 다른 학자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공적은 집권에 성공한 것이고, 최대 문제는 임기가 너무 길다는 것”이라고 했다. 덜컥 집권은 했는데 5년 임기를 메울 정책 수단조차 없어 대책 없이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 놓고 “10년 정권을 더 맡겨 주면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며 또다시 국민들에게 미끼를 던지는 것은 너무도 염치없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