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에 실린 이 신문 김현호 선임기자의 '남북워치' 기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내정자는 동년배 북한전공 학자들 가운데 북한 원전(原典)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80년대 대학원(성균관대) 재학시절 북한 노동신문을 해방 이후 창간 때 것부터 수십년 치를 모두 훑었고 이를 학위논문 작성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노동신문을 쉽게 구할 수 없어 집에 복사기를 빌려다 놓고 통일부 등에서 대출해 온 노동신문을 복사하고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했다고 한다.

    이 내정자는 운동권 출신도, 386세대도 아니다. 올해 48세(1958년생)인 그는 78학번으로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행정고시도 보았으나 실패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대학원에 진학해 북한정치를 연구했다. 북한 원전에 몰두한 탓인지 북한 체제를 북한의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분석하는 글들을 많이 발표해 보안당국의 주목을 받았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그가 발표한 글들 중에서 당국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록해 놓은 것이 50여건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북한의 거주이전·여행자유 제한은 사회주의 특성과 남북 군사대치하에서 택한 방어적 조치이다”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이며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변명이다”는 등의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그는 2000년 발간한 자신의 대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에서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사회발전에 매우 부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고 “북한은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우리를 파괴할 충분한 군사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 ‘우리의 적’임에 틀림없다”고도 했다. 그의 북한 인식이 북한 공식문헌 너머 북한 현실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내정자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 햇볕정책의 집행자였던 임동원씨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내정자가 1994년 세종연구소에 들어가려 할 때 연구소 내부에서는 그가 친북 성향이라며 반대가 심했다. 

    이때 그의 신원보증을 해준 사람이 이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던 임동원씨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씨는 전문가 그룹에 수시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설명해주고 이를 언론에 기고하도록 했고 이 내정자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이 내정자가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행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임동원씨의 선택이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이 내정자는 대선 후 당선자 특사격으로 임동원씨와 함께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내정자는 임동원씨를 자신의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게 됐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가다. 

    임동원과 이종석의 관계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노무현 정권에 고스란히 이어져 확대 발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징표다. 이종석은 ‘노무현 정권의 임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종석 파워의 원천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내정자와 오랫동안 교유하고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은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맞추어 정책의 수위를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 내정자가 바깥에 비치듯이 그렇게 이념형 인물이 아니며 자신의 주장을 대통령에게 고집하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핵심 정책자문역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그를 ‘동물적 감각을 지닌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이라크 파병 때 노 대통령이 전투부대 1개 사단을 보내자는 주장과 파병 반대 주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이종석 NSC사무차장은 비전투부대 1개 여단 파병안으로 문제를 풀어 나갔다. 

    이런 일들로 해서 진짜 ‘자주파’ 진영에서는 그를 ‘위장 자주파’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 내정자의 치밀한 업무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 그리고 무엇보다 비(非)유학파로서 독학하다시피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일궈낸 역량과 스타일이 비주류 의식이 강한 노 대통령을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외교 안보 통일 정책을 총괄하게 될 이 내정자에게는 국제정세를 폭넓게 읽어낼 수 있는 경륜과 안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늘 따라다닌다. 그를 전략가로 보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이 내정자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그의 미국과 북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불균형이 한국 외교안보정책의 ‘대미(對美) 이완, 대북(對北)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킨다는 비판도 그에게는 아플 것이다. 

    올해는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전략 강화 추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영토조항 삭제 개헌추진 움직임, 남북연합 추진설, 북핵문제의 교착과 미·북 갈등 증폭 기류 등으로 한반도가 요동칠 것이다. 그 태풍의 한가운데가 이종석씨가 있게 될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