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강천석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박이다. 딴 건 몰라도 흥행 감각만은 알아줘야 한다. 망년(忘年) 술이 덜 깬 신정 극장가엔 역시 이런 영화가 제격이다. 

    노무현 대통령·유시민 의원 주연의 ‘코리안 갓파더(Korean Godfather)’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연일연회(連日連回) ‘만원 사례’를 내걸고 있는 ‘코리안 갓파더’의 기세는 원조(元祖) ‘갓파더’를 넘보는 듯하다. 어느 구석을 뜯어봐도 원조 ‘갓파더’와는 견줄 바가 못 되는데도 흥행은 만점이다. 연기 덕을 본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입신(入神)의 연기라는 말론 브랜도는 현직 대통령이란 직함의 무게로 눌러 비겼다고 쳐도, 알 파치노와 유시민의 비교는 영 아니다. 아리아리한 청춘의 꽃봉오리로 스미듯 번져가는 악(惡)의 그림자를 그려내는 알 파치노 얼굴 연기, 거기다 등원(登院) 단상(壇上) 유시민의 백바지 연기를 들이대는 건 아무래도 실례에 가깝다. 그럼 뭘까.

    뭐니뭐니 해도 ‘한국판 대부(代父)’의 매력은 그 속에 담긴 ‘벌거벗은 정치학’이다. 화장을 지워버린 권력 게임의 맨얼굴을 싱싱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판 대부’의 주제는 맨얼굴의 한국 정치다. 이 영화에 관객이 든다는 것은 이 정권의 속살에 놀라워하는 순진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런 정치를 교과서 정치학으로 풀다간 겉돌기 십상이다. 이럴 때 요긴한 게 ‘마피아 정치학’이다. 바다 건너에서 ‘현대의 군주론(君主論)’이란 과분한 평(評)까지 들어가며 수십만부씩 팔려나갔다면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권력이란 판돈을 둘러싼 도박사의 속마음을 거울에 비춰 보듯 꿰뚫고 있다. ‘한국판 대부’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궁금한 대목마다 ‘마피아 정치학’은 ‘그건 이래서야’라고 안성맞춤의 해설을 제공해준다. 

    복지부 장관 임명에 대해 왜 해설과 추측이 저마다일까. 마피아 세계에선 으레 이런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두목은 졸개들에게 계획의 이 조각 저 조각을 쪼개서 일러줄 뿐이다. 전모(全貌)는 오로지 두목의 소관이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여당 안에 공공연한 대선(大選)주자가 두 명이나 있다는데 거기 또 한 사람을 굳이 풀어놓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뱀굴에서 뱀을 꺼낼 때가 되면 반드시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잘못하단 제 손을 물릴 수도 있으니까.” 

    두 명의 대선주자 모두가 ‘위’가 싫어하는 신문과는 인터뷰도 않을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데 의심이 지나치지 않은가. “두 주인(대통령과 국민)을 모두 모시는 척하는 중간 보스는 주인 중의 하나에겐 거짓말을 하고 있는 법이다. 주인이 둘인 돼지는 두 배의 먹이를 얻는 게 아니라 굶어죽도록 돼 있다.” 

    그래도 뻔한 두 얼굴이 승부를 겨루는 것보다는 흥행(興行)은 좋아지겠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야. 다섯 장 카드의 포커 게임에서 패가 돌아가는 경우 수는 259만8960가지나 된다. 패가 좋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의 구룡(九龍)이 김대중 후보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 걸 봤지 않나.” 

    재·보선 연전연패(連戰連敗)로 허덕허덕하는 듯하더니 어디서 힘이 나 장관인사 하나로 대선주자 둘을 차렷 열중쉬어 시키는 것일까. “그게 궁금하다니, 이빨이 빠졌다고 늑대가 본성(本性)마저 변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건 그렇다 해도 새해엔 국가운영에 대한 설계를 내놓겠다고 해놓고선 초장부터 정치 게임으로 판을 흔드는 건 국민에 대한 위약(違約)이 아닌가. “들고 있는 연장이 망치뿐인 사람의 눈엔 모든 상황이 못처럼 보이게 돼 있다.” 

    그럼 두 대선주자는 올해 내내 끌려다닐 수밖에 없겠네.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게 뭔가를 안다는 것은 그걸 위해서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도 안다는 말과 같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폭풍을 만나면 마음으론 하느님께 빌더라도 손으론 부지런히 노를 저어야 돼” 

    진짜 궁금한 건, 두 대선 주자 모두, 혹은 그중 하나가 못 미더워 새 사람을 집어넣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말소리 낮춰, 그게 문제지. 그 친구 옷장을 열어봐야 해. 수족(手足)같이 믿었던 졸개도 제 옷장엔 두목 몰래 두목만 입는 실크 양복을 걸어두고 있거든.” 

    아무튼 신년 영화가에서 ‘코리안 갓파더’는 대박이 났다. 그러나 우리와 경쟁하는 나라 가운데 신년벽두에 이런 B급 마피아 영화해설로 세월을 죽이고 있는 나라가 있긴 있는 걸까. 한심한 정월(正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