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 창단 30주년 프로젝트…정치용 지휘작곡가 김인규 '메타모르포시스: 영산회상', 오는 26일 예술의전당서 초연
  • ▲ 정악의 대표적 기악곡 '영산회상'을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연주하고 있다.ⓒ국립국악원
    ▲ 정악의 대표적 기악곡 '영산회상'을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연주하고 있다.ⓒ국립국악원
    정악(正樂·고려와 조선시대에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하던 전통음악) 기악곡의 대표곡 '영산회상(靈山會相)'이 서양 음악 도입 120년 만에 정통 클래식 체임버 오케스트라 소리로 옷을 갈아입는다.

    조이오브스트링스(Joy of Strings)는 오는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내년 창단 30주년을 앞두고 준비한 프로젝트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 : 영산회상'을 무대에 올린다. 정치용이 지휘봉을 잡고, 바이올리니스트 심정은이 객원 악장을 맡는다.

    본래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노랫말을 가진 불교 성악곡에서 출발한 '영산회상'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불교적 색채가 옅어지면서 기악곡으로 변화했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현악영산회상', 향피리 중심의 '관악영산회상', 음역을 4도 낮춰 웅장함을 더한 '평조회상'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전승돼 왔다.

    기본적으로 속도와 장단이 각기 다른 9개의 작은 곡(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으로 구성돼 전곡 연주에만 50분에서 1시간여가 소요된다. 워낙 느리고 정적인 탓에 국악 주자들 사이에서는 "상령산 중반부터 졸기 시작해 염불도드리 후반에 속도가 빨라지면 깨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명상적이고 깊은 호흡을 요구하는 곡이기도 하다.

    메타모르포시스는 변형·변용을 뜻한다. 공연의 중심인 '메타모르포시스: 영산회상'은 이 원형인 '현악영산회상'을 줄기로 삼아 한국의 젊은 작곡가 김인규가 5개 악장(40분 분량)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곡으로 재창작했다. 영산회상 전 악장을 서양 클래식 악단용으로 온전히 재구성한 시도는 음악사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국악기와 서양 악기의 1대1 매칭과 실험이 돋보인다. 단소는 플루트, 피리는 오보에와 트럼펫, 대금은 클라리넷 등으로 쓰인다. 국악 원곡의 주인공 격인 거문고의 묵직하고 거친 음색을 살리기 위해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 주자는 활 대신 북한산 대나무로 특별 제작한 '대나무 술대'로 현을 뜯는 독특한 연주 기법을 선보인다.
  • ▲ 이성주 예술감독이 지난11일 서울 종로구 송우홀에서 열린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메타모르포시스:영산회상' 기자간담회에서 공연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성주 예술감독이 지난11일 서울 종로구 송우홀에서 열린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메타모르포시스:영산회상' 기자간담회에서 공연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인규 작곡가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송우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산회상의 모체가 원을 그리며 도는 승려들의 공불(供佛)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착안해 '수행자의 여정'이라는 서사를 짰다. 원곡의 지극히 느린 초반부 일부는 생략했다"고 밝혔다.

    이어 "1악장 '하산(下山)', 2악장 '호접지몽(胡蝶之夢)', 3악자 '삼계화택(三界火宅)', 4악장 '고중작락(苦中作樂)',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러 속세로 나오는 5악장 '입전수수(入廛垂手)'로 이어진다. 일종의 로드 무비처럼 시각적 서사를 부여했다. 전통의 거대한 구조를 살리면서도 서양 오케스트라의 짜임새 있는 음향을 더해 관객들이 한 편의 음악극처럼 쉽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영 음악평론가는 이번 시도에 대해 "조선 시대 당악의 향악화, 1930년대 홍난파의 선양합주(鮮洋合奏)의 맥을 잇는 음악사적 사건이다. 단순한 번역이나 도구적 차용을 넘어 전통 선법과 장단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음악적 이중언어 세대'의 본격적인 성취"라며 "되도록 원곡과의 비교 감상을 권한다. 양 곡을 통해 드러나는 변형과 재구성의 과정은 새로운 청취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용 지휘자는 "단순한 편곡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봐달라. 이러한 시도가 특별한 일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 음악계의 일상적인 흐름이 되길 바란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만의 전통적 표현을 더욱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작곡가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1997년 제자들과 창단한 제자들과 창단한 조이오브스트링스는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로 사랑받아온 단체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K-클래식'이 정작 서양 음악의 복제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주체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왕준 조이오브스트링스 후원회장(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해외에서 우리 연주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우리의 클래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아무리 훌륭한 전통문화도 오선지에 기록돼 정형화되지 않으면 글로벌 음악가들이 접근할 방법이 없다. 영산회상을 세계적인 유니버설 레퍼토리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이성주 예술감독은 "30년 전 악단을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꼭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며 "이날 공연은 조이오브스트링스의 지난 30년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 창작 음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6일 무대에는 '영산회상' 외에도 동서양 혼합 앙상블의 회전성과 생동감을 극대화한 김인규 작곡가의 '강강술래', 전통 장단 '칠채'·궁중무용 '처용무'·반주음악 '수제천'을 소재로 한 김준호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 '무아'(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가 함께 연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