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실패한 先보상·단계론 … 北, 지원만 챙겨北, "비핵화 불가능" 평가는 안보 자충수임기 5년 … 韓美 정권교체 속 단계론은 환상日에 핵무장 주장 명분 … 韓, 역내 비핵 고립 위기단계적 북핵 관리론 공방에 전술핵 재배치론 재부상
-
- ▲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상하이 한 호텔에서 열린 순방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 비핵화'는 수십 년간 풀리지 않은 난제다. 하지만 북핵 위협의 1차 당사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단순한 현실 인식을 넘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용인하겠다는 신호로 읽힐 우려가 있다.국제사회는 지금까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하에서 북한을 법적(de jure) 핵보유국(NWS)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과 같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범주에 포함하는 데도 선을 그어 왔다. 이 원칙은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 단일대오를 유지해 온 근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평가한다면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이 동맹 내부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 아울러 국제사회 제재와 압박의 논리적 근거를 약화시킬 수 있다.더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이웃 국가 일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핵을 '폐기'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전환한다는 시그널은 일본 내 보수파가 '자체 핵무장' 주장에 힘을 싣는 논리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일본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한국은 한반도 주변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비핵국'으로 남게 된다. 미·일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에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더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대통령의 '불가능' 표현의 파장 … 목표-과정 혼선 우려이재명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중단, 축소, 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을 언급했지만 공개 석상에서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뒀다. 이는 '비핵화 로드맵'보다 '현상 관리'에 무게가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이 대통령은 지난 7일 중국 상하이에서 가진 순방 기자단 간담회에서 "한반도가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해야 하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서 지금 핵을 없애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겠느냐. 제가 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단기적으로 현재 상태에서 중단하고 보상이나 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그러면서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며 단기, 중기, 장기 목표에 따른 '동결·축소·비핵화'의 3단계 구상을 강조했다. -
- ▲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뉴시스
◆30년간 실패한 '北 체제 보장+경제적 보상+단계적 비핵화' 모델그러나 북한의 체제 보장+경제적 보상+단계적 비핵화 모델은 지난 30여 년간 실패로 증명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제네바 합의',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의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과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다.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 동결의 대가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로부터 1000MW(메가와트)급 경수로 2기 건설과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제공받는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북한이 합의의 허점을 이용해 플루토늄 대신 탐지가 어려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가동하다 2002년 발각되면서 합의가 파기됐다.2018년 싱가포르 회담과 이어진 2019년 하노이 회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강하고 연결되고 안전하며 번영한(SCSP) 북한'이라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 번영을 약속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도중 아이패드를 꺼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밝은 경제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요지의 영상까지 보여주며 김정은을 설득했고, 그 결과 미북 간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담은 공동성명까지 나왔다.그러나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모호한 약속만 내놓았을 뿐 핵 목록 신고나 사찰 등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영변 플러스알파' 폐기 요구를 거부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대가로 대북 제재의 광범위한 해제를 요구했다. 미국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고, 이후 북한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며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았다.◆헌법에 '핵' 박은 北, 단계론은 '희망 고문'지난 30여 년간 북한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등 표면적 양보로 경제적 보상을 챙기면서 핵능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을 벌었다. 이 과정은 결국 핵능력 증강과 핵무장 법제화로 이어졌다.북한은 2022년 3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해 2017년 11월 이후 유지해 오던 모라토리엄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이어 2022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통해 핵무기 선제 사용, 즉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 조건을 명시했으며, 김정은은 시정연설을 통해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나아가 북한은 2023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핵무력 정책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한다고 명시했다. 헌법상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함으로써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재확인한 것이다.◆비핵화에 최소 10년 소요 … 韓美는 4~5년마다 정권교체과거 북한 비핵화 협상의 실패 사례들은 '합의'보다 '검증'에서 반복적으로 좌초됐음을 보여준다. 제네바 합의 국면에서도 특별사찰을 포함한 검증 범위를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고, 2007년 6자회담 10·3 합의 이후에도 검증 프로토콜 협상이 교착되며 검증 체계는 끝내 정착하지 못했다.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북한 비핵화에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각각 5년과 4년(연임 가능)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 주기를 고려하면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검증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반면 북한은 세습 체제 아래 수십 년간 일관된 핵 개발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이 구조적 비대칭이야말로 단계적 비핵화가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가까운 이유다. -
- ▲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1월 23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공동취재
◆단계적 비핵화의 언어적 함정 … 단계론의 전제는 CVID임을 명시해야이 대통령의 발언은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수용 가능한 방안'을 찾자는 논리로 귀결되지만 비핵화의 비대칭적 구도를 고려하면 이는 필연적으로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 부분 용인하는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단계적 접근'을 진정성 있게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대외 메시지부터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핵화 목표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단계적 접근은 '핵보유를 인정하는 관리'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검증 가능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의미다.김태현 국방대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지난해 3월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견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그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글로벌 비확산 체제를 훼손하고 동북아 안보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며 "다행히 트럼프 신행정부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익명을 요청한 전직 안보 관료는 통화에서 "비핵화가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 동결·감축·폐기 같은 단계론은 내부 검토 차원에서는 논의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언급하는 것은 전략적 신호로 읽힐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단계적 접근을 말하려면 오히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최종 목표라는 점을 반복 확인해야 한다. 각 단계가 '핵 관리'가 아니라 '핵 폐기'로 수렴한다는 검증 절차를 함께 제시하지 않으면 북한의 시간벌기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실패한 모델의 반복, 그리고 실패의 예고 … 日 핵무장 시 한국 자율성 제약대통령의 언어 선택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 파급력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현실에서 한국 지도자가 '비핵화 불가능론'을 공식화하면 이는 일본 등 주변국의 자체 억제 옵션 강화 논의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일본의 억제력 강화, 나아가 자체 핵무장은 한미 확장억제 부담을 일부 덜어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이 주변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비핵국'으로 남는다면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일 주도의 안보 구도에서 전략적 자율성이 축소될 위험이 크다.실제 일본 내에서는 비핵 3원칙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는 등 핵 옵션에 대한 금기 해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해 12월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도입 가능성과 관련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핵 3원칙 중 '비반입' 원칙 재검토 가능성도 시사한 바 있다.한 안보 전문가는 "북한 비핵화 실패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 수준의 확장억제를 보장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안보 공약마저 흔들린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기존 핵우산이 신뢰를 잃는다면 과거 철수했던 미국 전술핵무기 재반입이 불가피하다. 상호확증파괴(MAD) 관점에서 재래식 탄도미사일보다 핵무기 탑재 잠수함 전력이 북한에 대한 억제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