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불필요' 선언 이면엔 美 호위 전력 부족이란의 통과통항권 봉쇄 … 파병 명분은 갖췄다파병, 표류 중인 원잠 합의의 정치적 돌파구로
  • ▲ 2023년 9월 13일 인천 중구 팔미도 인근 해상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행사 미디어데이에서 소해함이 무인 기뢰 제거 시범을 보이는 모습. ⓒ뉴시스
    ▲ 2023년 9월 13일 인천 중구 팔미도 인근 해상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행사 미디어데이에서 소해함이 무인 기뢰 제거 시범을 보이는 모습. ⓒ뉴시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 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말하건대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한 지 사흘 만이자 미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7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에 올린 선언이다. 트럼프의 '거래적 동맹관' 관점에서는 일견 자충수로 보이는 이번 발언은 동맹국들에 대한 좌절의 표현이자 압박 수단이란 평이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의 결속을 위해 파병 의지를 먼저 밝히되, 이를 한국의 핵심 경제·안보 현안 해결을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트럼프 '도움 불필요' 선언의 이면 … 美 해군의 호위전력 부족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도움 불필요'를 선언한 당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우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수년 동안 수조 달러를 썼고 그게 우리가 재정 적자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라면서 "유럽은 기뢰 제거선(소해함) 같은 간단한 도움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것은 큰 비용도 들지 않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다. 매우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어 대(對)이란 군사작전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면서 "이런 군사적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나토 회원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 일본, 호주나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날을 세웠다. 도움이 필요 없다고 선언해 놓고 나토가 소해함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따지는 모순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근거로 제시한 대(對)이란 군사작전의 성과는 실재한다. 미·이스라엘군은 이란의 군사시설 1만5000곳을 타격해 미사일·해군력을 무력화하고 최고지도자와 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등 상당한 군사적 성공을 거뒀다.

    구체적인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와 이스라엘군(IDF)에 따르면 탄도미사일 발사대는 70%가 파괴됐다. 전쟁 초기 대비 탄도미사일 발사율은 90%, 드론 발사율은 83% 감소했다. 이란판 'S-400'으로 불리는 바바르-373 방공망은 미국의 사이버·전자전·정밀타격으로 무력화됐다. 공군 전투기 대부분이 격추·파괴됐고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이란 전함은 3월 초 기준 44척이 격침됐다.

    그러나 이란이 국제 유가를 볼모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게릴라전 형태의 비대칭전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미 해군의 호르무즈 호위 가용 전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미 해군은 매일 해운업계에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위한 해군 가용 전력이 없다고 통보하고 있다. 미 해군연구소뉴스(USNI News)와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 등의 분석을 보면 5~10척 상선으로 이뤄진 호위편대 당 구축함 8~10척이 필요해 평시 통행량의 10% 미만만 통행이 가능하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뉴시스
    ◆'거래주의'엔 '거래주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도움 불필요' 선언을 한국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파병 무용론'이라는 편의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선언 하루 전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일본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도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 독일에도 4만5000명에서 5만 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며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병력을 크게 부풀렸다.

    이어 "우리는 이 모든 나라들을 방어하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가 '기뢰 제거함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글쎄,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군 화력의 6만 배에 달하는 북핵을 미국의 핵우산으로 억제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트럼프식 거래주의에 파병이라는 거래주의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표 '국익 중심 실용주의'의 성패를 가를 관건은 '파병이냐 아니냐'라는 흑백 논리식 이분법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무엇을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리느냐다.

    다만 한국군의 작전이 이란이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국제관습법상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 즉 '항행의 자유' 회복에 기여하는 것임을 명분으로 삼는 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 호위 작전을 펼칠 '호르무즈 연합' 참여는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는다. 또 파병이 이란의 한국 선박 표적화를 자초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이란이 현재 파키스탄·인도 선박은 외교 협상을 통해 통과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의 봉쇄가 전면 차단이 아닌 '선별적 통제'임을 시사한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는 모습. 옆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서 있다.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는 모습. 옆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서 있다. ⓒAP·뉴시스
    ◆소해함도 못 보내는 한계, 표류 중인 원잠 합의의 정치적 동력으로

    한국 안보가 처한 한계의 근원은 연안 방어 중심으로 설계된 해군 전력 구조가 대양 작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에 소해함의 호르무즈 투입을 압박했지만 한국 해군이 보유한 700t급 소해함 12척은 애초 연안 작전을 전제로 설계된 전력이다.

    장거리 항해 시 파고에 취약하고 작전 지속 능력에도 제약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소해 전력을 호르무즈까지 보내려면 별도의 수송 방안이나 보강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해함은 물론 이지스 구축함을 파견하더라도 준비와 이동에만 석 달이 걸린다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고백은 동맹의 부름에 곧바로 응할 수 없는 전략적 공백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 해군 전력 구조의 한계는 트럼프의 압박을 안보 위기가 아니라 '전략적 기회'로 전환할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2025년 10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고 후속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같은 해 11월 14일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미국의 공식 승인이 명시됐다.

    물론 정상 간 합의가 곧 실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잠의 핵심인 원자로를 돌리려면 농축우라늄 연료가 필요한데,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을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은 군사적 목적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뭔가 조정을 해야만 절차가 완결될 것"이라며 호주의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방식처럼 별도 협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미국 에너지부가 핵 비확산 정책을 이유로 까다로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미 의회 승인이라는 또 다른 관문도 남아 있다.

    팩트시트의 합의가 현실화되기까지 상당한 정치적 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호르무즈 파병이 바로 그 동력이 될 수 있다. 협상 의제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1순위는 원잠 연료 공급을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이나 별도 협정의 조기 체결이다. 2순위는 무역법 301조 관세 조사 면제 또는 완화다.

    군사 전문가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데일리에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무작정 응하면 동맹 관계에서 불리한 위치를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며 "거래주의에는 거래주의로 대응해야 한다. 파병해야 한다면 동맹국으로서 지원 의지를 밝히되 실질적 대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거래적 접근이 필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정적 외침으로 '파병해야 한다', '파병하면 안 된다'고만 주장하는 태도는 전략적 미숙함을 드러낼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오는 19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전투 종료 후 기뢰 제거 지원'이라는 조건부 제안을 먼저 내밀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한국에 대한 압박은 한층 거세질 수밖에 없다. 뒤늦은 항공모함 지원 제안으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망신을 당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