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 봉쇄, 韓 경제 68일 생존 한계李, 트럼프 '호르무즈 청구서'로 선택 직면2003년 盧 '국익 중심 실용외교' 복기할 때원자력협정 개정 등 실리 챙길 파병 결단 시급
  • ▲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의 사활은 이란이 봉쇄 중인 호르무즈해협 내의 '항행의 자유' 확보 여부에 직결되는 모습이다. 이에 '실용외교' 노선을 택한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이라는 중대 결정을 내렸던 때처럼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에 요청한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에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6일 에너지 수급 상황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유·석유제품 비축량은 정부 보유분 7648만 배럴과 민간 보유분 7383만 배럴을 합산해 총 1억5031만 배럴 규모다. 이는 약 208일분의 비축량으로 세계 6위 수준이나 석유제품 수출 물량을 계산에 포함하면 68일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입 원유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하는 만큼 지정학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유가 급등을 비롯해 연관 산업의 가동률이 저하되면서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란 전쟁 장기화가 호르무즈해협의 항행의 자유 확보를 우리 안보와 경제 생태계를 규정하는 최우선 변수로 부상시킨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 등을 통해 한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 등 7개국을 지목해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통과를 호위하고 이란 공격에 대비할 '호르무즈 호위 연합' 참여를 요구하며 '호르무즈 안보 청구서'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평화와 전쟁의 이분법'을 위시한 진보·좌파 진영의 지지를 받은 이재명 대통령으로서는 파병을 계기로 이란을 적국으로 돌릴 수 있다는 반대론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22년 전 이라크 파병 당시와 노무현 정부가 처한 유사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물론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군함 파견 요청이 공식 채널을 통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는 "한미간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도 한미동맹의 안정과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파병의 불가피성을 천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당적인 '국익 중심 실용주의'를 되새기게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전략적 모호성을 끝내는 것을 필두로 국가 안보와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권자의 정면 돌파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 후보 시절 "별 볼일 없이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 "반미면 어떠냐"고 발언한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한 2003년 3월 20일 미국 입장을 지지한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담화에서 "정부로서는 국제사회의 동향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그리고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 등 제반 요소를 감안해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2일 국정연설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이번 행동은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조속한 제거를 위해 이뤄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실론적 입장에서 대국민 설득에 나선 노 전 대통령의 노력에 힘입어 정부의 대이라크전쟁 파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70명 중 256명이 전자표결에 참여해 찬성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자주파 참모들의 이상론을 뒤로한 채 국익을 위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택함으로써 보수·우파 야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며 국론 분열을 수습하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은 연일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을 언급한 미국 매파로부터 '북한 체제 보장'이라는 확답을 끌어내는 전략적 거래에 성공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다. 이를 두고 노 대통령은 주변 참모들에게 "거봐라. 내가 나서 한국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미국의 무력 사용 여지를 줄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한미동맹은 노무현 정부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최소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됐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관세 압박, 오산 공군기지 압수수색, 한미일 연합훈련 불참, 주한미군 서해 공중훈련에 대한 항의와 사과 진실 공방 등 마찰로 인한 심각한 이완 징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이란 전쟁 16일 차인 지난 15일(현지시각) "지원을 받든 받지 않든 나는 이건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들에게도 전했는데 우리는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며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참여를 요구한 7개국(한국 포함)에 강한 메시지로 압박했다.

    물론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을 안정화하려면 이란의 아부무사, 대툰브, 소툰브, 라라크 등을 점령해야 한다. 그러려면 본격적인 지상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 명의 병력이 소요되는 '해병대 상륙작전'이 필요하다. 

    문제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한국 경제는 치명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전쟁의 단기화와 트럼프식 먼로주의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이기는 전쟁'에 선제적으로 참여해 실리적 대가를 챙기는 결단이 요구된다는 제언도 나온다.

    무엇보다 파병을 매개로 핵추진잠수함 건조, 한미 원자력 협정 조기 개정, 미국의 관세 인상 압박 완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북극항로 등 미래 교역로 개척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이 트럼프식 거래주의와 만나면 '안보 무임승차' 프레임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군 소식통은 "북한이 러·우 전쟁 참전으로 군사 기술과 현대전 경험을 축적했듯, 우리 군도 이란 전쟁에 전투부대를 파병해 혈맹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현대전, 정규전 실전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라크전 당시처럼 미국을 선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동맹의 신뢰를 확보하고 핵심 안보 요구 사항을 관철하는 '실용적 거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외교가에서는 2020년 호르무즈해협에 배치된 아덴만 파견 청해부대의 전례를 들며 이번에도 작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아덴만에서 해적 퇴치 및 상선 보호 작전 중인 청해부대의 근접방어체계 정도의 전투 능력으로는 정규전 상황에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 2005년 6월 1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하는 모습. ⓒ노무현 사료관
    ▲ 2005년 6월 1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하는 모습. ⓒ노무현 사료관
    이에 전문가들은 만약 우리 함정을 호르무즈해협에 파견한다면 이지스급 구축함을 중심으로 전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와 관련해 전직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전단에는 호위함, 지원함, 소해정 등을 포함해야 한다. 호위함은 근접방어체계 이외에 기본적으로 대공, 대미사일 방어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며 "작전시 전단은 15일 정도마다 재보급이 필요한데 실제 작전에 들어가면 모항으로 입항해 재보급할 수 없을 것이므로 보급함이 편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유조선과 함정을 보호하고 적 기뢰를 탐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소해정은 우리나라에서 호르무즈해협까지 자체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워 '해상 수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라크전 당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라는 법적 근거가 있었으나 현재의 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이른바 '결정 장애'로 사실상 형해화된 것이 현실이다.

    다만 '바다의 헌법'인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상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 즉 '항행의 자유' 수호는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 물동량의 12%를 점유한 한국에 호르무즈해협 개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2020년 청해부대의 '간접 동참' 전례를 넘어 이제는 소해(掃海) 작전 등 실질적인 기여를 통해 동맹 내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우리 전·현직 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