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1992년 한중수교 '원칙론'으로 선 그어韓, 한중수교부터 중국 입장 '존중' 입장 고수'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락한 국가는 51개국 뿐李 '실용외교', 서해·北 비핵화로 동시 시험대
  • ▲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4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공군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4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공군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4일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중국 측이 한국 정부가 1992년 수교 이래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One China Policy)을 넘어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rinciple) 준수를 공개 압박하고 나섰다. 이는 수교 정신을 훼손하는 현상 변경 시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중국이 양안 관계(兩岸·중국과 대만)를 '국내 문제'로 못 박아 국제사회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포석을 둔 가운데, 이 대통령이 중국의 서해 불법 구조물 설치 문제에 대해 최소한 '모라토리엄'이라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청와대는 이번 방중을 한·중 양국 모두의 2026년 '첫 국빈 정상외교'로 규정하고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관계 전면 복원'의 흐름을 본궤도에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확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입장이다. 그 입장에 따라서 대처해 가겠다"고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선을 그으며 원칙론에 입각해 답변했다.

    한국 정부는 한중수교 당시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지지는커녕 '동의'를 표명한 적도 없다. 한국은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법 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외교 언어상 '입장'은 사실상 '정책'과 가까운 의미로 해석되며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은 수교 교섭을 개시했던 1992년 4월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락하지 않으면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은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락했다.

    당시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의 주요 함의인 정부 승인, 대사관 철수, 외교재산 이전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한편, 대만과의 역사적 특수성에 기반해 대만과 최고 수준의 비공식 관계를 수립하는 데 대한 중국의 양해까지 얻었다.

  • ▲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4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공군1호기에서 내려 환영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4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공군1호기에서 내려 환영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마치 '국제사회의 일반적 합의'이자 '국제 관계의 기본규범'인 것처럼 허위 주장을 펼치며 용어 혼란 전술을 펼쳐왔다. '180여 개 국가들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반해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는 중국의 주장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정론이자 역사적 사실이다.

    2023년 2월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166개 국가와 관련한 중국 외교부의 공식문서를 분석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채택한 국가는 51개국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115개국은 '인식', '주목·유념', '이해', '존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중국과 대만의 국가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국가들도 상당수였다.

    외교가에선 중국이 정상회담 직전까지 '용어 혼란술'을 동원해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제약하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달 31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통화는 이 같은 기류를 극명히 드러냈다.

    왕 부장은 통화에서 "일본의 일부 정치 세력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며 침략·식민 범죄를 뒤집기 하려 한다"며 "한국 측이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국제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 믿는다. 대만 문제를 포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한미일 공조의 약한 고리인 한일 역사 문제를 활용해 한국을 권위주의 연대로 끌어들이려는 전형적 갈라치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 ▲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166개 국가와 관련한 중국 외교부의 공식문서를 분석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채택한 국가는 51개국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115개국은
    ▲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166개 국가와 관련한 중국 외교부의 공식문서를 분석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채택한 국가는 51개국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115개국은 "인식"(acknowledge), "주목·유념"(take note of), "이해"(understand), "존중"(respec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중국과 대만의 국가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국가들도 상당수였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2023년 2월 9일 발표한 보고서 (The Many "One Chinas": Multiple Approaches to Taiwan and China) 캡처

    위 실장은 이날 브리핑 모두 발언을 통해 "한중 관계 복원에 걸맞게 서해를 평화와 공영의 바다로 만들고 문화 콘텐츠도 점진적·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안팎에 무단 설치한 16개의 불법 구조물 문제도 의제로 오르느냐'는 질문에는 "경주 APEC 계기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논의가 있었고 그 이후 실무 협의가 진행된 바 있다"며 "협의를 바탕으로 진전을 모색하고 있고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의제로는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의하에 추진 중인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원잠) 건조 문제가 대대적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위 실장은 북한이 지난해 말 공개한 '핵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을 두고 "핵 추진일 뿐 아니라 핵무기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형태"라면서 "그런 새로운 안보 환경의 변화에 우리가 적절히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한국의 원잠 도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의 핵잠을 추적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핵잠 역량이 있고 (핵잠 도입은) 그런 것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잘 설명해서 납득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위 실장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 문제는 정상회담의 주요 주제 중 하나"라며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일본이 주장하는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 온 만큼 중국 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응할 가능성은 작다.

    원잠과 북한 비핵화 문제는 각각 설계·원자로 인증·시험평가·전력화까지, 그리고 사찰·검증까지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반면 중국의 서해공정은 남중국해 전례에서 나타나듯 2~3년 안에 기정사실이 될 수 있는 '속도전'이다. 서해 PMZ 현안은 후속 실무협의를 넘어 추가 설치 중단·현장 확인·상설 협의체 등 최소 진전의 형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지 여부가 방중 성과의 실질을 가르는 잣대로 작동할 전망이다.

    결국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공동 문서로 도출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위 실장은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항상 어떤 공동문건을 상정하고 준비하지는 않는다"며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공동 문건을 준비하거나 협의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