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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파리=AP/뉴시스]
"유럽은 믿은 수 없는 사기꾼들이다", "한국과 일본은 수십년간 우리 돈을 뜯어 먹었다"
세계의 대통령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전통적인 동맹국들에 대해 쏟아부은 저주에 가까운 발언들이다.
"우리는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일한다", "미국이 아니라 동맹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일한다"
입만 열면 이렇게 동맹을 지키겠다고 하는 이 사람은 사기업인 팔란티어의 창업자 알렉스 카프다.
동맹이라는 정치적 용어는 미국 대통령이 주로 써온 말이지 동맹이든 적이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인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런 모습은 매우 낯설다.
게다가 트럼프와 카프의 동맹에 대한 완전히 다른 태도는 더욱 낯설다.
트럼프는 동맹국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서라도 미국으로 돈과 기술을 빨아들여 주도권을 지키겠다는 방식인 반면, 카프는 압도적인 기술격차로 동맹도 지키고 미국의 지배권도 지킨다는 식이다.
트럼프가 중국, 러시아, 인도 같이 현재의 실력자들을 미국과 묶어 'C5(Core5)'란 것을 만들어 'G7'을 대체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전통적인 유럽의 강국들에게 수십 % 관세를 때리더니만 이제는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반면 카프는 중국, 러시아, 이란과 같이 자유세계의 적들에게는 팔란티어의 물건을 절대로 팔지 않을 것이고 '나토(NATO)'와 같은 동맹국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트럼프와 카프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는 미국이 지배한다. 지금까지 처럼'
두 사람은 이 말을 다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알렉스 카프가 세운 팔란티어는 2025년 미국의 주요 기업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회사 중 하나다.
카프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국가적인 대의에는 관심을 꺼놓고 그 많은 돈과 그 좋은 머리를 고작 SNS 기술’에 쏟아 붓는 것은 낭비라고 한다. 그런 ‘하찮은 기술’에 매달리다가 서구사회가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최고의 기술은 국가와 공동체의 안보와 대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프로그래머도 세상의 역사와 흐름, 모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도 한다.
카프는 애플이 범죄 수사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도 아이폰의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한 것은 공동체의 대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모습때문에 카프를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카프 자신은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진보주의자라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가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이다.
카프가 자칭 진보주의자라면 개인의 권리를 중시해야 하므로 아이폰 비밀번호 공개 강제를 반대할 것 같지만 뜻밖에 국가의 대의가 개인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에는 비밀번호는 공개해야 한다고 한다.
카프의 생각이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유가 있다.
진보든지 보수든지 무슨 이념이든지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라는 운동장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을 쥐게 되면 진보나 보수같은 한가한 소리를 할 수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미중 패권전쟁 중이라는 특수성과 그 전쟁에서 반드시 미국이 이겨야 하는 절박함보다 우선 되는 개인의 권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중국 전략에 있어서 트럼프와 카프의 전략을 닮았다.
트럼프는 2025년 내내 중국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거에 쫓기지 않고 긴 안목으로 국가 전략을 세워서,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고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축적하며 미국의 AI 수준을 따라잡고 있는 중국이 그만큼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엔비티아 칩과 같은 고급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고, 틱톡의 지분을 빼앗다시피 양도받는 식의 강공을 펴고 있지만 중국의 버티기 전략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카프의 팔란티어도 중국 봉쇄전략을 펴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는 뜻에서 “‘우리 아니면 그들’이 아니고 ‘우리와 그들’이 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글을 썼는데, 팔란티어의 최고기술책임자이자 억만장자인 샴 싱카는 젠슨 황을 ‘쓸모있는 바보’에 비유하며 정신차리라고 꾸짖었다.
중국풀도 뜯고 미국풀도 뜯어야 한다는 엔비디아 소와 중국풀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미국풀만 뜯어야 한다는 팔란티어 소가 한판 붙고 있는 것이다.
젠슨 황 뿐만이 아니다. 정치와 이념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있는 세상과 그 세상에 순응하고 있는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을 향해 카프는 위험을 배제하고 충돌을 회피하며 평균으로 회귀하려는 유혹을 떨쳐내라고 일갈한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 속에 중국 제조업의 최고의 대체제로서 대한민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엄청난 기회 앞에서 대한민국은 중요한 질문을 받고 있다.
아직도 미국풀도 뜯고 중국풀도 뜯을 작정인가라고 묻고 있다.
우리가 엔비디아 소의 길과 팔란티어 소의 길 중에 어떤 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할 것을 요구받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알렉스 카프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는 한국 정부에게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위험배제, 충돌회피, 평균회귀의 유혹을 떨쳐버리라고, 그리고 지금은 미중 패권 전쟁 중임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