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원달러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 동원 검토스튜어드십코드·국내 증시 불쏘시개에 환율 소방수 역할까지 요구환율 방어 동원되면 수익성 희생 불가피…연금 신뢰 추락 원화 가치 하락의 근본 원인은 유동성, 구조적 해법 찾아야
  • 우리 증시가 ‘오천피’까지 한달음에 도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물들었던 이달 초, 정치권은 국민연금이 올해만 20%대 수익률을 올렸다며 한껏 고무됐다. 국민연금이 연평균 6.5% 의 수익률만 유지해도 고갈 시점을 209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며 마치 연금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것처럼 들떴다.

    급기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민연금을 오천피 달성의 밑천으로 삼자는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1500원 턱밑까지 치솟자 정부는 국민연금을 코스피 불쏘시개에 더해 환율 소방수로까지 동원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한국은행과의 ‘외환 스와프 계약 연장 및 확대’, 보유 달러를 시장에 내놓는 ‘전략적 환 헤지’, ‘해외주식 투자 비중 축소’ 등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론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가지 수단으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서는 해외 자산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글로벌 강달러 장기화와 견고한 미국 증시, 한국보다 높은 미국의 기준금리 등을 감안하면 수익률 측면에서 달러 자산 투자는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리는 게 맞다.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을 줄여 원화를 사면 일시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단기 대증요법일 뿐 구조적인 원화 약세 흐름까지 바꿀 수는 없다. 만일 원달러 환율이 다시 상승해 국민연금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기회를 놓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요인으로 총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약속,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증가, 자산 형성의 기회를 잃은 개민들의 미국 주식 투자 확대 등이 꼽히지만 무엇보다 한미간 금리 격차가 가장 크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3.75%~4.00%인 반면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50%에 불과하다. 한미간 금리역전이 역대 최장인 무려 41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많은 통화를 시중에 뿌리니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경제현상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연금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에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고 기업 지배구조에까지 관여할 태세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주로써 주주환원 극대화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가 이에 관여하면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에까지 동원되면, 전국민의 노후 생계자금인 국민연금은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높이고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과 운용역 보수 정상화를 통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이는 게 국민연금의 최대 목표가 돼야 한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을 동원한다는 소식에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벌써 내 노후자금은 어떻게 되느냐‘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신뢰를 잃으면 노후 불안을 느끼는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원화 약세는 단순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 자금 유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해법으로 풀어나가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