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억 달러 총액만 기재 … 산정 기준 미지수직·간접비 10년치 계량화 주장, 美 동의 불투명문서에 명시되지 못했다는 건 합의 불성립 의미문서 공백 메우는 대통령실 사후 구두 해설 반복SOFA·SMA 선례와도 다른 '총액 제시' 논란 증폭플라자합의·오키나와 사례 등 구두 약속 리스크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한미 정상회담 결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문)에 '주한미군 330억 달러(약 48조 원) 지원' 항목이 총액만 기재된 채 기간·산정 기준·세부 내역은 명시되지 않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새로운 부담이 아니라 '기존 직·간접비를 10년 치로 계량화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팩트시트 어디에도 이러한 산식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미국이 이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국무부는 해당 항목의 구체적 산정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국내 건조 승인 여부와 마찬가지로, 팩트시트에 없는 세부사항이 대통령실의 사후 구두 해설을 통해 부연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정부의 설명이 합의의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군 330억 달러 지원' … 대통령실 "現 지원 수준 10년 치 계량화"

    21일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 14일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한국은 또한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고, 한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게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상당의 포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공유했다"고 명시돼 있다. 

    '2030년까지'라는 기한이 명확하게 적시된 군사 장비 구매 사안과 달리, 한국이 주한미군에 제공한다는 33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인 지원이 어떤 항목을 포함하는지, 직·간접비를 어떻게 산정했는지, 기한은 언제까지인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및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과 어떤 관계인지는 미지수다.

    팩트시트 발표 후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새로운 양보가 아니고, 지금 지원하는 것을 계량화한 것"이라며 "지원 금액은 현재 (매년) 10억 달러, 10년 카운트를 해도 100억 달러인데 330억 달러가 도출된 것은 주한미군 지원하는 여러 직간접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사후 설명에도 이번 팩트시트를 계기로 향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3배로 증가하거나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도 한국이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통령실은 지난 17일 언론 공지를 내고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상 '330억 달러 상당의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 지원'은 한미 간 기존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 따른 지원에 더해 주한미군에게 무상으로 공여되는 토지, 각종 공과금, 세금 면제 등의 여타 직간접 지원을 모두 포괄한 수치로서 향후 약 10년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추산치"라며 "상기 330억 달러 상당의 지원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새롭게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주한미군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동 수치를 제시하고 이 수치의 근거를 미 측에 설명한 바 있다"며 "이러한 여타 직간접 지원에는 한미 군사훈련 비용이나 전략자산 전개 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우리 정부는 유효하게 타결되고 발효된 제12차 SMA를 개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며, 미 측으로부터 동 협정 개정 요구를 받은 바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협상 경험자들은 문서에 없는 내용은 합의로 보기 어렵다는 국제 협상 관례를 들어 대통령실 사후 구두 해설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를 담당했던 전 외교부 관계자는 "양국 간 합의되지 않은 사항은 공식 문서에 담기지 않는다.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양측이 합의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사후 브리핑에서 어떤 설명을 덧붙이더라도 문서에 없는 내용이라면 국제 협상에서는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 2024년 10월 4일 한미 양국은 오는 2026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올리되, 2027~2030년엔 현행 국방비 증가율이 아닌 물가를 연동시켜 연간 인상율이 최대 5%를 넘지 않도록 합의했다. ⓒ뉴시스
    ▲ 2024년 10월 4일 한미 양국은 오는 2026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올리되, 2027~2030년엔 현행 국방비 증가율이 아닌 물가를 연동시켜 연간 인상율이 최대 5%를 넘지 않도록 합의했다. ⓒ뉴시스
    ◆직·간접 비용, SOFA·SMA 구조상 총액 제시 선례 없어

    이처럼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 비용을 10년 치로 계량화해 미국에 제시했다는 대통령실의 해설이 팩트시트에 담기지 못한 이유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SOFA와 SMA가 각각 주한미군의 간접비와 직접비를 규정하고 있는 구조에서 SMA 협상 역사상 지금까지 직·간접비 전체를 하나의 총액으로 제시하는 전례는 없었다.

    SOFA는 한국이 주한미군 부지·시설을 무상 공여(제2조)하고 미군기지에 대해 전기·가스·수도를 감면 또는 원가 이하로 공급(제3조)하며 미군 유지비는 원칙적으로 미국이 부담(제5조)한다고 규정한다. SOFA 제5조에 대한 예외 규정인 SMA는 한국이 SOFA 틀 안에서 추가로 현금·현물로 부담할 항목(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을 정한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부지 제공 비용(기회비용 포함)·전기료 감면, 카투사 인력, 환경정화비, 전기·수도·가스 감면 비용, 행정·경찰·치안 지원, 기지 주변 SOC 확충 등은 SOFA·국내 법령에 따른 '간접 지원'에 해당해 SMA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간접 비용은 대부분 예산 항목도 흩어져 있어 공식 총계 산정도 쉽지 않으며, 미국은 한국의 간접 비용 산정 방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 ▲ 조태열(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2024년 11월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식에서 서명후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조태열(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2024년 11월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식에서 서명후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전문가들 "1953년부터 계속된 지원을 이제 명시? … 미국 측 동의 여부 밝혀야"

    SOFA와 SMA 협상에 정통한 복수의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기존 관행에 비춰볼 때 팩트시트에 포함된 '주한미군 330억 달러 지원' 항목의 성격 자체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SOFA 체계에서 한국은 1953년부터 기지 부지·시설·기반 인프라를 무상 제공해 왔고, SMA는 그 위에서 별도로 시설 건설·군수지원·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등을 협상해 왔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을 금액으로 일괄 환산해 문서에 명시하는 방식은 한미 협상 관행과 맞지 않으며, 산정 기준과 항목 구성, 특히 미국 측 동의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이 정확히 답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수십 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아온 간접 지원을 갑자기 '10년 단위 지원 총액'으로 환산해 넣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거래주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제 와서 '고맙다'며 계산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미국은 그런 방식의 산정 기준을 협상 테이블에서 인정한 적이 없다"고 짚었다.

    이어 "만약 정부 설명대로 330억 달러가 기존의 간접비와 감면 혜택을 모두 합산해 만든 숫자라면 그것은 '한국이 1953년 이래 제공한 모든 기반 지원을 이번에 총액으로 묶어 제시했다'는 의미가 된다"며 "그렇다면 왜 그 기준이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는지, 미국 측이 이를 실제로 수용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SMA는 매년 미 의회의 승인을 거치는 정식 협정이고 규모도 통상 10억 달러 내외로 관리돼 왔다. 한국이 제공해 온 간접 지원은 SOFA 체계에서 이미 수십 년 동안 부담해 온 항목들인데, 이를 갑자기 모두 계량해 '10년 치 총액'으로 제시했다면 그 산정 기준과 미국 측의 명시적 동의 여부가 무엇보다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의 간접비를 모두 합산해 10년 단위로 환산했다는 설명이 사실이라면 논리적으로는 '과거에도 우리가 이미 그에 상응하는 규모를 계속 제공해왔다'는 결론이 된다"며 "그렇다면 왜 그동안 SMA 협상에서는 이런 방식의 산정과 근거가 제시된 적이 없고, 왜 이번 팩트시트에만 총액이 등장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런 방식의 비용 산정을 공식적으로 이해하거나 인정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SMA 협상에 관여했던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간접 비용 산정 방식에 따라 액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카투사 지원 비용을 군사 지원으로 볼지 미군 인건비로 볼지에 따라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교수는 "미국이 이러한 계산 방식을 그대로 인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계산 방식에 대해 과거 외교부 내부에서도 '분식회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혼란이 있었다"며 "미국이 이러한 산정 방식을 실질적으로 수용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문서 없는 구두약속은 약한 고리 … 플라자 합의 후속 조치·오키나와 기지 갈등

    역사적으로 문서 없는 구두약속은 항상 약한 고리였다. 1985년 미·일 플라자 합의 후속조치와 2014년 일본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 비용 산정 갈등은 동맹 관계 내 협상에서 문서화되지 않은 약속이 사후 해석 갈등과 압박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직후 미국은 일본에 "자동차·전자 등 비관세장벽 완화 방안을 추가로 협의하자"고 구두로 제안했다. 일본은 이를 '통상 협력 확대' 정도로 해석했으나, 해당 약속은 합의문에 명확히 명문화되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일본이 자동차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압박을 가했고, 1995년 슈퍼 301 발동으로 일본 자동차에 최대 100% 관세 부과 위협이 현실화됐다. 이 사례는 문서에 구체적 항목이 없으면 사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으로 압박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일본 중앙정부와 오키나와현, 그리고 미·일 양국은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 비용 산정에 대한 해석 차이를 반복적으로 노출했다. 일본 정부가 기지 이전·신설 비용을 구체적인 산식은 제시하지 않은 채 '예상 총액' 형태로 추계해 발표하자, 오키나와현은 세부 산정 근거 공개를 요구했고 미국은 일본 측이 제시한 비용 구조가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핵심 항목·산정 기준이 협정문에 명시되지 않은 탓에 공식 문서보다 사후 설명과 해석에 의존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장기화했다. 이러한 문서 공백은 2014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를 전후해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대규모 비용을 현(県)에 전가하려 한다'는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했다.

    이처럼 디테일이 부족한 한미 팩트시트는 주한미군 330억 달러 지원, 원잠 국내 건조 승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등 여러 면에서 오히려 한국 안보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

    안보 패키지와 경제 패키지를 미국의 요구대로 분리해 협상하면서 한국이 막대한 대미 투자로 쥘 수 있었던 레버리지가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