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부담은 한국 몫, 미국은 원론만 남겨원잠·원자력 핵심 변수, 후속 협상 파급 주목330억·250억·3.5%… 수치 뒤 리스크는 여전C4ISR·C2·3축 충족 등 전작권 기준도 안갯속동맹 르네상스인가, 불투명한 청구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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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한미 양국이 14일 발표한 관세·투자·안보 협상의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는 관세, 투자, 안보를 통합한 대규모 패키지 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한국이 부담할 항목은 수치와 기한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반면,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의 한국 내 건조와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여부 등 미국이 제공해야 할 핵심 사안은 문서에서 빠졌거나 원론 수준에 머물러 합의의 비대칭성과 구조적 미완성성이 부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韓, 3.5% 국방비·250억 무기 구매·330억 지원 패키지 약속안보 분야의 핵심은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수준까지 가능한 조속히 상향 조정하고, 2030년까지 미국산 무기 250억 달러 구매를 확정했으며,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330억 달러 규모 포괄 지원 방안을 약속한 대목이다.그러나 팩트시트에는 '원잠 건조 승인'만 명시됐을 뿐 한국 내 건조와 시기 등 핵심이 빠져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여부와 조정 범위, 군사용 핵 물질 사용에 따른 미국 내 절차, 핵연료 조달 방식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쳤다.◆원잠 건조 논란 … 韓 "한국 내 건조 전제" vs "팩트시트에 누락"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했다"며 "건조 위치에 대해서는 일단 정리됐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작업하다 보면 어떠한 부분에 협업할 수 있고, 어떠한 부분에선 미국에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원잠을 어디서 짓느냐는 한국에서 짓는 걸 전제로 (미국과) 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전문가들은 위 실장이 전제한 '한국 내 건조'가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안보 전문가인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시기와 장소를 문서에 못박았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관철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건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만약 미국이 필리조선소 건조를 끝까지 주장한다면 한국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 20년이 걸리고 비용은 두세 배, 세네 배로 불어나는 구조라 받을 수 없는 카드"라고 말했다.익명을 요청한 전직 안보 관료는 "우리가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지만, 미국으로부터 받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다"며 "미국 무기 250억 달러 구매, 2030년까지 진행되는 1500억 달러 조선 투자,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 2000억 달러 투자 등 한국이 제공하는 항목은 숫자와 방식이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미국이 제공해야 할 핵심 사안인 원자력 협정 개정은 '논의 시작' 수준에 머물렀고, 원잠도 필라델피아 조선소 건조 가능성을 미국이 언급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이를 '한국 내 건조'라고 설명할 뿐 팩트시트에는 명시되지 않았다"며 "중요한 사안들이 원론적 합의 수준에서 멈춰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연료 조달 방식도 불확실 … "LEU 협력 해석 가능"원자력 협력 부문은 팩트시트에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 '한국의 평화적 이용 범위 내 농축 및 재처리 절차 지지',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문구가 포함돼 있지만 그 구체성과 법 적용 범위는 불명확하다.한 전문가는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한다'는 내용은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LEU) 범위 내에서만 협력이 가능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며 "개정 협상의 시작을 의미하는 문구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즉,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HEU) 제공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비확산 틀 내에서 필요한 절차를 지지한다' 정도의 원칙적 합의라는 설명이다.◆주한미군에 대한 330억 달러 포괄 지원 … "새로운 약속 아닌 기존 비용의 10년 산정"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330억 달러 지원 항목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을 계량화해서 숫자로 제시한 것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측에 우리 기여를 보다 분명히 알리고, 그걸 협상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서 수치를 만들어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10억 달러가 조금 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도로·전기·수도 요금 등 직·간접비용까지 포함해 10년으로 환산했다는 의미다.박 교수는 SMA 협상 당시의 실무 경험을 근거로 "간접비용 산정 방식에 따라 액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카투사 지원 비용을 군사 지원으로 볼지 미군 인건비로 볼지에 따라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기회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식도 있고, 혼잡통행료 면제 같은 항목까지도 간접비용에 포함될 있다"고 설명했다.다만 "미국이 이런 계산 방식을 그대로 인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계산 방식에 대해 과거 외교부 내부에서도 '분식회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혼란이 있었다"며 미국이 이러한 산정 방식을 실질적으로 수용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주한미군에서 7년 이상 근무한 박기철 예비역 육군 대령(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은 국방비 증액 및 미국산 무기 구매, 주한미군 지원 330억 달러 약속은 각각 별개의 공약이 아니라 통합된 패키지라고 설명했다.그는 "330억 달러는 회계적으로 세부 항목이 공개된 금액이라기보다는, 한국이 향후 10년 이상에 걸쳐 주한미군의 기지 인프라, 시설 유지, 연합훈련 강화, 확장억제 실행력 향상 등에 투입할 중장기 재정 패키지로 제시한 총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짚었다.이어 "한국 국방비 증가분 중 일정 비율(약 15~20%)을 주한미군 관련 분야로 배분할 경우 자연스럽게 연 30억 달러 내외의 규모가 도출되며, 이를 10년 단위로 환산하면 300억 달러대의 금액이 산정된다"며 "국방비 증액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330억 달러라는 규모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전직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금 연간 방위비 분담금인 약 10억 달러인데, 2035년까지 지금보다 3배 정도를 더 낸다는 의미라면 일본이나 독일에 비해 너무 많이 양보한 것"이라며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1~2배 정도이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임기 내 전작권 전환 …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된 정의조차 없다특히 한국 안보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가 원잠 이슈에 가려 주목받고 있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익명의 안보 전문가는 "전작권 전환 문제야말로 장기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라며 "현 정부가 서둘러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상황이 주한미군의 포스처 조정이 명확해지지 않은 점과 결합하면 리스크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특히 전작권 전환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되는 구조"이며 C4ISR(지휘·통신·정보·감시·정찰), 지휘통제체계, 3축체계 등 핵심 전력의 충족 기준 역시 양측이 명확하게 합의해 놓은 상태가 아니라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고 우려했다.◆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구조·농축산 개방 논란경제·통상 분야 역시 한국의 투자 규모 3500억 달러가 명확하게 공개돼 있으나, 미국의 위험 분담 구조는 미흡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팩트시트는 '백지시트'"라며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무역 협정"이라고 비판했다.장 대표는 "먼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구조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부담해야 된다는 점, 연 200억 달러씩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외환 보유 훼손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투자 손실 발생 시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한마디도 없다"고 꼬집었다.또한 자동차 품목 관세율 인하 적용 시점과 관련해 "일본, EU는 8월 소급 적용인데 우리는 8월 소급 적용을 관철시키지 못해 기업들은 8000억 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게 됐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농축산 시장 추가 개방에 대해서도 "농식품 무역의 비관세 장벽 해소, 미국산 농산물 승인 절차 간소화, 미국 과일 채소 전용 데스크 설치, 육류 치즈 시장 접근성 보장 등을 명시했다"며 "국내에 농축산물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후속 재정·제도 리스크 부상 … 동맹 르네상스인가, 모호한 가격표인가이처럼 한국이 제시한 항목들은 금액·기한·방식이 비교적 분명하지만, 미국이 제공해야 할 핵심 이익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후속 협상 범위가 방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비대칭은 단일 현상이 아니라 협상 구조 전반에 내재한 문제로, 후속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부담해야 할 재정·제도·정책적 리스크가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가 여러 수치와 약속을 담고 있음에도, 실제 쟁점은 앞으로 이어질 협상과 양국의 국내 정치 절차에서 어떤 '정치적 가격표'가 붙는가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이 큰 틀의 구조는 보이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부는 구체적 실행안과 투명한 후속 협상 결과를 통해 국민·동맹국 신뢰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