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부녀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계성 지능인인 이들 모녀는 16년 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주민에게 나눠줘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이들 모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고 아내이자 친모를 살인하고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은 진술 신빙성 문제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이들은 존속살인 혐의로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이 막장 사건으로 모든 국민들이 공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막장 드라마의 숨겨진 진실이 16년 만에 밝혀졌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이 사건을 재심에 넘겼고 지난 18일 법원은 이 사건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자백이 검찰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당국이 막장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에 맞춰 진술을 강요해 사건을 만든 것이다.
수사당국이 범죄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에 맞춰 강압수사로 진술을 받아내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 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중기 특검의 조사를 받은 양평군청 소속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특검조사를 받은 뒤 그가 남긴 메모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특검의 강압적인 말투와 무시에 결국 공무원은 특검이 만들어놓은 허위 진술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너무도 큰 치욕에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세상을 등지고 싶다고 적었다.
허위진술을 받아내는 이러한 강압수사의 관행은 특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정치적인 사건일 때 더욱 심해진다.
지난 2019년 법조기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취재했다. 삼성뇌물사건의 핵심 증인이었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병원으로부터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은 상황이었다.
검찰은 그런 김 전 기획관을 구속하고 하루도 안 빠지고 고강도 조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미국 로펌에 근무하는 김석한 변호사가 2008년 3월 또는 4월에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고 삼성과의 뇌물 수수 합의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김석한 변호사는 2008년 3월에 청와대를 방문해 14분을 머물렀고 4월에는 52분을 머물렀다. 이 두 날 중 하루가 김석한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나 뇌물수수 합의가 이뤄진 날이라는 진술이다.
하지만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3월에 김석한 변호사가 방문하여 14분을 머물렀던 그 시각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관저에서 오찬회동을 하고 있었다. 김석한 번호사가 52분을 머문 4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읍에 행사차 내려가 있었다.
두 날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한 변호사가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도인지장애가 걸린 김백준 총무기획관을 가족사로 압박해 허위진술을 받아낸 것이다.
당시 실체적 진실을 아는 사람은 김석한 변호사였다. 검찰이 진실을 원했다면 외국에 체류하던 김석한 변호사를 불러들여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김석한 변호사도 검찰이 본인에게 내린 출국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한국에 들어와 진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끝내 출국금지를 풀어주지 않았다. 김석한 변호사의 진술과 증언을 검찰이 막아버린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의 가장 핵심 증인인 김석한 변호사의 진술이나 증언 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개혁될 필요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잘못된 수사 관행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법조인은 그나마 검찰은 양반이라는 소리를 했다. 최근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특검의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개혁의 대상은 허위진술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이러한 강압수사를 척결하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 수사권만 검찰에서 특검, 또는 경찰로 넘긴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사법개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