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불어민주당 3대 특검 대응특위 전현희 위원장 등이 1일 종로구 광화문KT 빌딩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3대 특검 대응특위 전현희 위원장 등이 1일 종로구 광화문KT 빌딩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3 계엄 사태 이후 조기 대선을 치르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직후 출범한 '내란특검', '김건희특검', '채상병특검' 등 이른바 3대 특검이 온갖 이슈를 집어삼키고 뉴스 보도를 장악한 지 5개월째에 들어섰다. 

    그 사이 검찰청이 폐지되며 일부 검사들은 이재명 정부가 검찰을 폐지하겠다면서 오히려 특검 수사를 강화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수사를 더는 이어갈 수 없다며 줄지어 자진 사퇴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떨까? 특검 주도로 쏟아지는 혐의와 단정, 익명 취재원의 해설까지 덧붙은 속보들은 연일 뉴스 포털사이트의 주요뉴스 상단을 번갈아 점령하고 있다.

    뉴스는 쏟아지지만 언론 본연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인 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연일 이슈를 제조해내는 특검의 존재 방식 자체가 권력이 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보도하지 않을 지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애초 특검제는 권력형 비리 같은 사안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담보하려고 야당이 주도해 만든 장치였다. 여당의 영향력을 최소화해 중립적 수사를 기대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번 특검은 출발부터 그 취지와 정반대다. 다수 여당이 밀어붙였고, 야당은 절차와 운영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특검 탄생 과정에 위헌·위법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까지 나왔지만, 정작 특검은 그 논란을 스스로 상쇄할 만한 절제와 절차적 겸손을 보여주지 못했다.

    절차적 정의 부분에 있어서 많은 논란을 야기해오며 별건 수사 금지부터 피의사실 공표에 있어서도 형법 및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고 기소 전에는 공표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이를 다 무시했다. 

    이같은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특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매일 같은 시각에 예고되는 브리핑, 파상적으로 흘러나오는 피의사실 성격의 단편, 맥락 없이 소비되는 단독 경쟁은 피의자 방어권과 인권을 가볍게 만든다. 

    형사사법은 법정에서 완성되지만, 여론법정은 브리핑룸에서 매일 선고를 내린다. 특검은 수사기관이지 홍보기관이 아니다. 공익적 필요가 명확한 사안,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 가능한 사안, 피의자 측의 반론 기회가 보장된 사안만 선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처럼 뒤집혔다.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우리는 특검이 던지는 이슈를 모두 받아 적을 의무가 없다. 오히려 선택할 권리, 더 엄밀히 말해 선별할 의무가 있다. 보도의 자유는 곧 절제의 자유다. 

    공소장에도 들어가지 않을 문장들을 제목으로 뽑고, 출처가 불분명한 해석을 인용부호로 감싸며 검증이 끝나기 전 단계의 중간 결과를 속보로 경주하는 행태는 결국 사법 절차에 개입하고 여론을 오염시킨다. 특검의 과잉 브리핑과 언론의 속보 경쟁이 만나면, 무죄추정은 가장 먼저 희생된다.

    언론은 권력과 대중 사이에서 사실을 검증해 공익을 실현하고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실을 검증하며 알 권리를 보장하되 사생활이나 피의자 인권 등 침해는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 본인만 해도 '의혹'을 마치 확정된 사실 마냥 자극적인 제목으로 선택 할 때가 많았고 기사거리의 최대 제공자인 특검의 브리핑을 단순히 받아 적으며 피의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검은 권력 감시의 예외적 기구여야지, 새로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 힘으로 탄생했고, 다수의 입맛에 맞는 브리핑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특검이라면 그 자체가 감시의 대상이다. 

    언론은 그 감시를 대행하는 기관이지, 특검의 메가폰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알림을 받지만 모든 알림이 뉴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검을 보도할 권리와 특검을 보도하지 않을 권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권리의 균형을 지키려는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