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퀸즐랜드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제2차 세계대전 실화 모티브 소설나치에 의해 독일인으로 거듭난 폴란드 소녀의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
  • ▲  표지.ⓒ키멜리움
    ▲ <코끼리한테 깔릴래, 곰한테 먹힐래?> 표지.ⓒ키멜리움
    <코끼리한테 깔릴래, 곰한테 먹힐래?>

    ◆ 이 책, 이 문장

    나는 중요한 뭔가를 깨닫는다. 사람들은 착하면서 나쁘고, 친절하면서 못됐고, 용감하면서 겁이 많고, 행복하면서 슬픈, 그런 것들이 뒤섞인 존재라는 것이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아무도 전적으로 나쁘기만 하지 않다.



    코끼리에게 깔리는 것과 곰에게 먹히는 것 어떤 쪽이 나을까?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밸런스 게임'과 비슷한 '선택 게임'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피아의 가족이 즐겨하는 놀이다.

    조피아는 원치 않게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떠나 새로운 독일인 부모와 살게 된다. 나치의 '우월한 아리아인 만들기'라는 끔찍한 목표 때문이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여러 나라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독일인화'했던 레벤스보름프로그램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조피아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납치 당한다. 그리고 폴란드 가족, 언어, 추억을 모두 잊고 새로운 독일 이름과 사상으로 재교육된다.

    이후 조피아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고 진실을 마주한다.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다루는 정체성 찾기의 여정이 이 소설에서는 전쟁이라는 잔혹한 배경에서 진행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과 정반대를 옳다고 믿던 과거를 떠올리며 주인공은 극한의 혼란을 겪는다.

    소설은 선과 악의 구분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친절하면서도 잔인할 수 있다. 선악의 구분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계를 찾을 수 없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선택의 서사'를 강조하는 것이다.

    조피아의 가족이 즐기던 선택 게임은 시간 때우기 용 말장난이 아니라 정신을 예리하기 벼리는 훈련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해야 하는 선택은 때로 고통을 야기하지만, 우리는 존엄을 내려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선택을 거듭해 나간다.

    2023년 퀸즐랜드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청소년 역사소설 <코끼리한테 깔릴래, 곰한테 먹힐래?>를 통해 독자는 인생에 깃든 아름다움과 슬픔의 공존을 깨닫게 된다.

    지은이 카트리나 나네스타드 / 옮긴이 최호정 / 출판사 키멜리움 / 352쪽 /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