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희생, 서민은 고통… 노무현 트라우마 반복되나이건희의 도전, 정의선의 용기도 '허상'될 판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노무현 정부가 본격 출범한 2003년 3월, 코스피는 512포인트를 저점으로 꾸준히 우상향을 시작했다. 그 해 코스피 상승률은 29.2%에 달했다. MB정부에 정권을 내준 대선 직전달인 2007년 11월 2085포인트까지 치고 올라갔다. 재임 기간 4배가 넘는 상승률, 역대 어느 정권도 이뤄내지 못한 지표였다. 그동안 외국인 자금은 밀물처럼 들어왔고, 시장은 미쳐 돌아갔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노무현 정부 당시 경제가 좋았다 회상할 이는 없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곳에서도 통용됐다. 그렇게 쌓아올린 경제 지표가 모래성 같은 버블로 증명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MB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수직낙하한 코스피는 2008년 10월 892포인트로 반토막이 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3000선을 뚫어버린 코스피에서 노무현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것은 사뭇 불편한 일이다. 한 번 겪어본 일인만큼 기이할 정도로 익숙하다. 0%대로 떨어진 성장률 전망, 생산·투자·소비가 동반 감소하는 불황 속에서 주가만 치솟는다. 기업 실적은 바닥이지만, 장밋빛 미래만 떠든다. 펀더멘탈은 그대로 인데 무작정 오른 지표는 종국에는 터지고 마는 버블일 뿐이다.

    다시 돌아가 끝내 버블이 터진 노무현 정부의 실물 경제는 어땠나. 서민들은 카드대란을 겪으며 내수는 얼어붙었고, 청년·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강력한 세 규제로 부동산 만큼은 잡을 줄 알았던 서민들은 끝없는 양극화와 걷어차여진 사다리 밑동 옆에서 몸서리 쳐야 했다.

    분노한 민심이 정권을 향하자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건 재벌 개혁론이었다. 출자제한제도로 삼성을 겨냥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회계부정,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시켰다. '이게 다 기업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레토릭에 국민들은 분노는 옮겨갔고, 그렇게 기업은 희생양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재벌들에게 들이댄 논리도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통과시킨 상법 개정안과 똑같은 논리 구조다.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해 대주주를 견제하고, 이사들의 충실 의무를 확대해 손발을 묶어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노란봉투법도 마찬가지다. 노조의 불법 쟁의에 면죄부를 달아주는 법이다. 이미 정치화된 노조를 이용해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아예 틀어막을 수도 있다.

    놀랍도록 치밀한 사전 준비에 기업들은 떨고 있다. 정부는 임기 초 기업들과 소통하고, 기업인들을 내각에 중용하는 등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지만, 한 번 겪었던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의 '실용 미소' 이면에 상법 개정과 노란 봉투법이란 기업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칼날은 예리하게 벼려지고 있어서다. 정부여당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담은 상법 추가 개정안 추진을 다시금 공언한 상태다.

    코스피 3000 시대를 다시 맞이한 기업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주가가 오르는 걸 싫어하는 기업이 있을까 만은 실적 개선 없는 상승은 뒤통수를 서늘케 한다. 오히려 상법 개정과 함께 밀려드는 해외 투기 자본에 경영권을 잃을까 노심초사한다. 공격적인 투자 계획은 뒤로 밀리고 있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쏟아질 것으로 예상됐던 투자 소식도 조용해졌다. 

    정권이 기업 죽이기에 나서면 기업은 으레 침묵으로 맞서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업이 멈춰선 자리에 들어서는 불황은 서민들이 고스란히 견뎌야 할 고통이다. 

    기업이 국민의 적으로 내몰린 사회에서는 뚝심으로 반도체 사업을 밀어붙인 이건희의 도전도,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세운 정의선의 용기도 꿈같은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