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주관강정애 보훈부 장관 등 700여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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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귀국 후 연설하는 이승만 박사. ⓒ연세대이승만연구원
    국가보훈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남수) 주관으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날 추모식은 영상시청, 추모 식사(式辭), 추모사,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 및 유족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875년 황해도 출생의 이 전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을 발행해 주필로 활동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됐으며,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대통령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 대표로 임명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했고,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정부는 이 전 대통령의 공적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신 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신명을 바쳐 희생·헌신하신 모든분이 제대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식순. ⓒ국가보훈부 제공
    ▲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식순.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