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사망' 검색어 사라지는 中 포털사이트… 당국이 추모 억눌러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리커창 고향… 200m 추모 행렬 이어지기도
  • ▲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연합뉴스
    ▲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연합뉴스
    중국의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지난 27일 사망한 리커창 전 중국 총리 관련 소식이 검색어 순위에서 돌연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오전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 50개에서 리 전 총리 사망 소식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8일까지만 해도 중국 당국이 발표한 리 전 총리의 부고가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차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날 바이두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는 '대만이 무력으로 통일된다면 정의로운 전쟁이 될 것'이었다. 해당 검색어는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가 허레이(何雷) 중장이 중국의 언론사 환구시보(环球时报)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 상위 50위에서도 리 전 총리 관련 해시태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웨이보에서는 지난 28일 '리커창 동지 영정' '리커창 동지 부고'가 각각 검색어 순위 1위와 2위를 기록했다.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해시태그는 22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후야오방(胡耀邦) 추도식 계기 1989년 톈안먼 사태 재조명… 34년 전 상황과 닮아

    리 전 총리가 유년기를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시와 추저우시 일대에는 28일까지 그를 추모하는 중국인들의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리 전 총리가 살았던 집 앞에 국화를 놓으며 그를 추모하고 눈물을 흘리는 영상들도 소셜미디어(SNS)에 잇달아 게시됐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리 전 총리 생가에 헌화하려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며 "생가가 있는 홍싱루 80호 골목에는 추모 행렬이 200m 넘게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추모 카드에는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등 리 전 총리의 생전 발언이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허페이의 조화가 동나서 외지에서 배송할 정도로 추모 열기가 높지만, 현지 언론들은 이런 내용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엑스(X·옛 트위터)에는 중국의 여러 대학이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학생들의 집회를 금지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이에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운동이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추도식이 계기가 됐다는 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개혁 의지가 강했던 후 전 서기 추모 열기가 반정부 시위로 번졌고, 무력 진압과 유혈사태가 빚어지자 큰 후폭풍이 일어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톈안먼 민주화운동의 계기가 됐던 후 전 서기의 사인도 리 전 총리와 같은 심장마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학생들이 자체적인 애도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학교가 원하지 않는다"며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란이 있었다"고 말한 시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나온 '불필요한 소란'은 톈안먼 시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톈안먼 시위를 34년이 흐른 지금도 '1989년 춘하계 정치풍파'라고 지칭한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인터내셔널(RFI)' 중국어판은 "리 전 총리의 별세가 '제2 톈안먼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당국이 추모 분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 지난 28일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주택 앞에 하루 전 갑작스레 타계한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하다. ⓒ연합뉴스
    ▲ 지난 28일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주택 앞에 하루 전 갑작스레 타계한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하다. ⓒ연합뉴스
    中 관영 매체, '리커창 사망' 단신성 뉴스만… 추모 분위기 등 다루지 않아

    관영 매체들은 리 전 총리 사망과 관련한 단신성 뉴스만 내보내며 민심의 흐름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 27일 오전 리 전 총리 사망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중국중앙TV(CCTV)의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는 당일 뉴스 시작 14분 만에 리 전 총리 사망과 관련한 당국의 부고만 짤막하게 보도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관영 통신 신화사 등 주요 관영 매체들도 줄곧 CCTV를 인용했을 뿐, 리 전 총리의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별도의 기사는 다루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중국 당국이 정부 개혁을 추진하고 노점경제 활성화를 통해 민생을 챙기는 등 친서민 행보를 보인 리 전 총리 추모 분위기가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언론 통제에 나섰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당국은 리 전 총리가 심장마비로 지난 27일 오전 12시10분쯤 상하이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리 전 총리는 수영을 하던 중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이 내려졌으며, 시신은 베이징으로 운구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파벌싸움에서 밀려 지난 3월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시 주석이 사실상 1인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이후에도 소신 있게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시 주석의 '제로 코로나'(봉쇄정책)에 반대하는가 하면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18만원쯤)밖에 안 된다.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발언은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사회 건설'을 향한 정면반박으로 읽혔다.

    퇴임 후 중국경제 회복 둔화 속에 오히려 인기가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은 리 전 총리 사망으로 시진핑 3기의 독주에 제동을 걸 만한 중국 내부 견제세력이 구심점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