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룡씨, 제2회 물망초인 상 수상북에 정보원 심어 구출에 활용...DNA 채취로 납북자 모친 상봉 성사도
  •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하는 데서 멈춥니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고, 이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행동'하는 남자입니다.

    최 대표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군포로 12명과 납북자 9명을 탈북시켰습니다.
    2004년에는 건국 이후 최초로 국군포로 백종규 하사 유해를 송환하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에 심은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 납북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에서 납북된 김영남임을 언론에 최초에 공개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납북자가족모임과 일본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납북학생 가족의 DNA를 채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남의 어머니가 최계월임을 증명했고, 2006년 6월 금강산에서 납북자 김영남과 그의 어머니의 상봉을 성사시켰습니다.

    최 대표는 미국 국무부, 한국 통일부에서 일하는 고위 관료가 아닙니다.
    유엔에서 일하는'인권운동가'도 아닙니다.
    또 북한 인권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소지한 '고학력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12명의 국군포로, 납북자 9명을 탈북시켰습니다.
    21명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게다가 최 대표는 납북자 김영남씨와 그의 어머니의 만남을 성사시켰습니다.
    민간인 혼자의 힘으로 '기적의 역사'를 여러번 썼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북한인권운동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23년 동안 국군포로와 납북자 구출 활동에 헌신한 그의 공로와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7일 사단법인 <물망초>가 그를 제2회 '물망초인(人)'으로 선정했습니다.
    <물망초>는 ▲대한민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 ▲국군포로나 납북자 구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10년 이상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 중 한명을 선발해 매년 5월 '물망초의 날'에 '물망초인(人)상'을 시상합니다.

    제2회 물망초인(人)으로 선정된 최 대표는 이날 수상소감으로 "북한인권활동가로 살면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며 만감이 교차한 듯 울컥했습니다.
    최 대표는 어떻게 하다 북한인권운동가의 삶을 걷게 되었을까요.

    최성룡 대표의 부친 최원모 씨는 미국이 대북정보 수집을 위해 1948년 조직한 특수부대 켈로부대 대원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켈로부대가 해체되면서 그는 남하했습니다.
    이후 연평도 앞바다에서 선박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다 1967년 어로 작업을 하던 중 북한 무장선에 납치됐습니다.
    당시 최성룡 대표는 15살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납북된 아버지를 만난 적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 김애란 씨는 한평생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다 1993년 3월 19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북송 되는 것을 TV로 본 김애란 씨는 최 대표한테 북에 있는 아버지 유해를 찾아 "내가 죽으면 합장해다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최 대표는 북한에 정보원을 심으며 국군포로와 납북자 구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 대표는 이날 시상식에서 구출활동을 하다 서러웠던 사례 중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2000년 4월 납북자 이재근씨를 최초로 구하러 현장에 갔는데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대사관에서 (이재근 씨한테) '당신 국가에 세금 낸 적 있느냐'고 따졌다"고 밝혔습니다.
    최 대표는 그동안 "납북자와 국군포로 해결에 정부와 공무원들 관심이 별로 없고, 소극적이며, 심지어 해결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해왔습니다.

    지난해 9월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납북자나 국군 포로에 대한 지도자의 자세, 공무원의 자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 개선을 요청, 반영된 점이 있지만 아직까지 문제가 많다고 본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나라가 못하면 자신이 나서서 국군포로-납북자 구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활동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모시고 나와라. 내가 책임진다'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에 왔다. 국군포로, 납북자 탈출에 협조해준 가족, 당사자, 고국 인계에 협조해준 영사분들께 감사한다"며 수상소감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