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은 바쁘다. 
    자신이 [JAPAN INSIDE OUT]에서 경고한 ‘산불’이 마침내 갈망하던 ‘미-일전쟁’으로 폭발하자 흥분하여 동분서주한다. 이제 워싱턴에서 새로운 전쟁국면에 전략전술을 구사해야하는 임시정부의 ‘전시대통령’이 된 셈이다.

    ★이승만, 김구에게 ‘대일 선전포고 하라’ 급전

    루즈벨트가 의회에서 참전법을 통과시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전에 이승만은 중경의 임시정부 김구에게 급전을 날린다. “임시정부 이름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발표하고 미국에 모든 협조를 하겠다는 성명을 만들어 나에게 보내 달라.” 이것은 미일전쟁을 예상한 이승만이 진작부터 생각해둔 계획이다. 반드시 미국과 연합국이 되어 일본과 싸워야만 임시정부의 당당한 독립권리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김구는 12월10일자로 대일선전성명을 발표하였고 외교부장 조소앙이 루즈벨트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성명서를 이승만에게 보냈다. (The Syngman Rhee Correspondence in English 1904~1948, vol.7, 연세대한국연구소,2009)
    ★진주만 기습 이튿날 이승만은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패디스(Charles Faddis) 의원을 방문, 한국독립과 임시정부 승인문제를 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패디스는 국무장관 헐에게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미국무부를 찾아가, ‘한국인은 일본인이 아니다’라며 일본인으로 몰려 공경에 빠진 한국인들을 ‘반(反)일본인’(Anti-Japanese)으로 인정, ‘한국인’으로 대우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왜냐하면 각 주정부들이 한국교민들을 적국 일본국민으로 간주, 은행계좌를 동결하고 사업 중지명령을 내려서 동포들이 하루아침에 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 임시정부는 드골의 ‘자유프랑스운동’과 같다“ 승인 요청

    이승만은 조소앙의 성명을 미국정부에 제출하고, ”중경의 임시정부는 프랑스 드골(Charles de Gaulle)의 망명 자유프랑스운동(Free France Movement)와 같다“면서 ”임시정부를 승인해야  우리 광복군이 미국의 전쟁을 적극 협력할 것이니 미국이 한인병력을 활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무부 정치고문 혼벡(Stanley K. Hornbeck)에게 청원서를 내고 루즈벨트 대통령과 헐 국무장관에게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이승만이 호스킨스에게 보낸 편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료집-20, 주미외교위원부, 2007]. 하와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도 국무장관에게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는 전보를 때맞춰 보내게 했다.
  • ▲ 이승만이 독립운동기간 주고받은 방대한 영문서한과 전문들을 영인출간한 책 표지. 전8권중 제7권.(연세대 한국학연구소 발행,2009)
    ▲ 이승만이 독립운동기간 주고받은 방대한 영문서한과 전문들을 영인출간한 책 표지. 전8권중 제7권.(연세대 한국학연구소 발행,2009)
    ◆무장투쟁 선언...”폭력이 아니라 전쟁의 신성한 의무”

    이승만은 주미외교위원장 이름으로 국내외 동포들에게 보내는 ‘공포서’(公布書)를 발표한다.
    “미일충돌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전쟁이 돌발한 이상에는 미국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세계 인류의 희망이 달렸으니까. 동경 베를린 로마에서 미친개 같이 난폭한 저 전체주의자들이 꽁꽁 묶어놓은 세계인들을 해방해야 하겠으니까....(중략)....동포 제군은 이 때에 행할 신성한 의무가 여러가지이니, 일본인의 군기창을 폭파시키고 왜적의 철도를 파괴하며 일군의 통행 도로에 폭탄을 묻고, 무장한 일본인은 보는대로 포살하며, 여러 가지 사보타주 방법과 폭력으로 왜적들의 전쟁 설비를 방해하고 부수며, 사나운 맹호들같이 제군은 동서호응 남북약진하야 적을 습격 박멸하고...”([신한민보]1941.12.25)
    평시의 일회용 폭력투쟁을 배격해 왔던 외교독립운동가 이승만에게 이것은 적이 도발한 전쟁인고로 결사적 항전은 ‘신성한 의무’가 된 것이었다. 
    진작부터 전쟁임박을 감지한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구 도노반(William J. Donovan)이 수장이 되어 갓 출범한 미국 정보조정국(COI:Office of Coordination of Information)의 비밀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COI의 제2인자 굿펠로(Preston M. Goofellow)와 친분을 맺고 있었던 이승만은 자신의 책 [JAPAN INSIDE OUT]을 주고, 한국인들의 대일작전 활용방안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한 참이었다. COI는 다음해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전략사무국)으로 개편된다.
  • ▲ 미국무부의 실세 고위관리 소련간첩 알저 히스. 왼쪽사진은 부부.(자료사진)
    ▲ 미국무부의 실세 고위관리 소련간첩 알저 히스. 왼쪽사진은 부부.(자료사진)
    ◆미국무부의 소련 간첩 알저 히스, 임정 승인 반대

    미-일전쟁 발발 한 달도 안돼 1942년 1월1일 26개 연합국 공동 선언(Declaration by United Nations)이 나왔다. “연합국의 모든 자원을 전쟁에 사용할 것과, 추축국인 나치 독일, 이탈리아, 일본 제국과는 각국이 단독으로 휴전하거나 강화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서 ‘대서양 헌장’과 함께 유엔 창설의 기초가 된 선언이다. 26개국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망명정부들도 참여 서명하였다. 이미 미국무부에 한국도 참여시켜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이승만은 이를 보자 격분, 미국무부 혼백에게 달려갔다.
    이승만은 미국이 임시정부를 승인해주고 미군에 편입시켜주면 일본을 잘 아는 한국군대가 파괴공작과 게릴라 활동에 자신 있음을 자세히 설명하며 ‘무기 대여법’을 적용하여 군사지원을 해달라고 다시금 역설하였다. . 
    그때 혼벡의 보좌역 히스(Alger Hiss,1904~1996)가 불쑥 나섰다.
    ”그 제안은 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전제한 것이므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 현 단계에서 미국이 한국정부의 독립을 승인하면 북아시아에 이해관계가 큰 소련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이가 없는 이승만은 막강한 힘을 가진 젊은 미국 관리를 설득하려 시도하였다.
    제정 러시아 때부터 소련이 시베리아 남쪽의 부동항(不凍港)을 한반도에서 확보하려고 지난 반세기 넘게 호시탐탐해 왔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미국이 미리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는 조치를 해 놓지 않으면, ”일본이 패망한 뒤에 틀림없이 소련이 먼저 한반도를 점령하고 말 것“이라며 그 이유를 이승만이 설명해 나갔다.
    그러자 히스가 말을 잘랐다. 현재 미국의 중요한 전시(戰時)동맹국을 공격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앉아 있기 곤란하다면서, ”소련이 아직 대일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는 히스였다.
    이승만은 그때 미국무부의 실세 관리가 미국이 아닌 소련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술회한다. (Robert Oliver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Dodd Mead and Company, 1960)

  • ★루즈벨트 정부에서 암약하는 소련 간첩 200여명...매카시 선풍

    알저 히스 부부는 소련 간첩이었다. 
    특이한 것은 당시 미국에 들끓던 소련 간첩들이 소련의 유혹이나 협박이나 돈이나 약점 때문에 간첩행위를 했다기보다는 레닌 혁명이후 세계를 휩쓴 공산주의 열풍이 만들어낸 이념적 토착 공산주의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재무부 차관보 화이트(Harry D. White),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무보좌관 커리(Lauchlin Currie), 국무부 라틴아메리카 국장 비서 리(Duncan Lee)등 수십명의 간첩들이 미국 정부 곳곳에서 활약했다. 극비의 원자탄 개발계획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1941~1946) 팀에도 간첩들이 과학자로 위장 취업, 기밀을 빼내 소련의 뒤늦은 원자탄 개발을 앞당길 정도였다. 
    미군의 ’베노나(Venona) 프로젝트‘가 암호 해독으로 밝혀낸 간첩만 200명이 넘었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히스를 간첩으로 지목하는 경고도 무시하고 특유의 친소주의에 집착, 보란 듯이 그를 총애하였다. 같은 무렵 소련간첩에서 전향한 위터커 챔버스(주간지 [타임] 국제부장)이 히스의 범죄 증거를 폭로하고 FBI가 수사해도 루즈벨트는 외면하였다. 
    특히 1944년 전후처리를 위한 얄타회담에 히스를 데려가 소련 스탈린과의 협상에 임하였고, 루즈벨트의 야심작 유엔 창설의 주무를 맡겨 사무총장을 시켰으며, 국제금육기구 IMF 설립까지 담당시켰다. 
    뒷날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Joseph R. McCarthy,1908~1957)가 ”미국무부는 간첩의 소굴, 내손엔 205명의 명단이 있다“며 공개 고발하면서 덜미를 잡힌 히스는 하버드 출신 변호사답게 법망을 빠져나가 겨우 위증죄 44개월 징역으로 석방된다. 진보세력(liberals)의 ’매카시즘‘ 역공 분위기를 이용, 적반하장의 반론을 펴며 92세까지 살았다. 중국의 공산화(1949)와 소련의 핵실험 성공 등 ’적색공포‘ 속에서 ’간첩청소‘의 깃발을 들었던 매카시가 일찍 타계하자 좌파의 공세는 ’말 없는 죽은 자‘를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시키고 말았다.  

  • ▲ 미국정부에 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개최한 한미협회 모임(1944).ⓒ연세대이승만연구원
    ▲ 미국정부에 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개최한 한미협회 모임(1944).ⓒ연세대이승만연구원
    ★이승만의 ’문서투쟁‘...’한미협회‘ 미국 지도층은 ‘자유의 동지’들  

    포기를 모르는 이승만은 히스를 만난 1주일 후 한미협회의 이름으로 ’한국상황‘(The Korean Situation)이란 장문의 보고서를 국무장관 헐에게 직접 보내 본격적인 ’문서 투쟁‘을 병행한다. 
    이승만의 ’미국친구‘들로 구성한 ’한미협회‘(The Korean-American Council)는 이사장에 미국의회 상원의 원목(Senate Chaplain) 해리스(Frederick B. Harris, 1883~1970)목사, 회장에 전 캐나다 대사 크롬웰(James H. Cromwell), 서기 파머(James W.Farmer), 재무 윌리암스(Jay J. Willams), 법률고문 스태거스(John W.Staggers)등 이사 8명, 전국위원회는 위원장에 상원의원 페퍼(Claude Peffer) 등 36명으로 구성한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한 이들의 직업은 외교관, 대학총장과 교수들, 작가 등 문화인, 현직군인 등으로 박사만 15명이나 된다. 한국인은 이승만 혼자뿐, 중국의 유명한 작가 임어당(林語堂,Lin Yutang)과 중국군 대령 예첸 박사를 빼고 전원 미국인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승만이 그동안 미국에서 엘리트층에 쌓아온 인맥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사장 해리스 목사는 청년 이승만이 조지 워싱턴대학 시절부터 다녔던 파운드리 감리 교회(Foundry Methodist Church)의 담임목사, 백악관 인근의 교회는 루즈벨트와 트루먼 등 역대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 각계각층 지도층의 단골 교회였다. 
    특히 해리스는 6.25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즉시 참전하도록 트루먼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INS 통신사를 운영하던 윌리엄스는 홍보 선전을 대행하고, 변호사 스태거스와 함께 법무부와 국무부에 이승만의 대리인(agent)으로 등록, 무보수로 이승만을 지원하였고, 건국이후까지 이승만을 국제적으로 대변해주었다. 한미협회 사무실도 스태거스의 소유 콜로라도 빌딩에 입주, 무료로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직접 물심양면을 바쳐 발로 뛴 이 미국지도자들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다. 

    ★이들이 ’한국상황‘에 써 보낸 청원의 요지는 너무나 뜨겁기만 하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1882년에 체결된 수호 및 상호방위조약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이 조약은 한국 황제에게 서방 세계와의 무역을 위한 문호개방을 권고했던 미국 해군제독의 요청에 따라 우리 국무부가가 체결했던 것입니다. 이 조약은 1883년에 미연방의회 상원에서 비준된 이래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공동의 적인 일본과 싸우고 있다고 강조한 미국인들은 임정 초대대통령 이승만이 ’3.1운동의 지도자‘임을 강조하면서 루즈벨트의 결심을 촉구한다.
    ”미국 시민들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도력 아래 이 나라(미국)가 외국(한국)과 맺은 조약의 신성한 의무를 준수하는 도덕성을 회복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미국의 승인을 받게 되면 2,300만 한국인들은 항일전에서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승만의 지론 ’미국 도덕성의 회복‘이란 문구는 미일전쟁에서 한국군을 앞장세워 일본을 격파함으로써 미국이 과거의 죄악 ’배신‘을 속죄하라는 의미, 이 점을 수없이 되풀이 상기시키는 심리전 전술이었다.

  • ▲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호텔서 개최한 한인자유대회 참석자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호텔서 개최한 한인자유대회 참석자들.ⓒ연세대이승만연구원
    ◆라파예트 호텔 ’한인자유대회‘
       오로지 ”한국 승인 & 무기지원“ 요구
     
    ’문서투쟁‘과 ’집회투쟁‘ & ’거리투쟁‘---이것은 23세 이승만이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때부터 익숙한 ’운동의 기본‘이다. 1898년 스스로 일간지를 두 개나 창간하여 고종황제를 입체 공격했던 그는 이번에 워싱턴에서 루즈벨트를 향하여 본격적인 전방위 투쟁에 나섰다.
    영문저술 [JAPAN INSIDE OUT]을 백악관과 정부와 군부에 배포하고 끊임없는 편지와 문서 전달, 그리고서 미국 독립운동사에 유명한 라파예트(Lafayette) 호텔에서 한인 자유대회(Korean Liberty Conference)를 개최한다. 
    라파예트 장군은 미국의 독립전쟁에 스스로 뛰어들어 공을 세워 ’신대륙의 영웅‘이란 호칭을 받았고 프랑스혁명에도 참여한 ’자유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를 기념하는 라파예트 광장은 백악관 대통령의 공원이며, 거기 라파예트 호텔 미러 룸(mirror room)에서 한인자유대회를 열어야 하는 것이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다목적 노림수이다. 미러 룸은 1918년 폴란드 독립대회가 열렸던 사실로 유명해진 곳이었기에 그런 곳에서 이번 한인자유대회도 3.1독립운동 23주년 기념 대회로 열었던 것이다.

    윈크스(WINX) 방송국이 중계한 회의는 2월27일부터 사흘간 한인대표 100명, 미국인사 100명이 참석하여 열띈 연설을 이어갔다. 마지막 날 3월1일에는 ’3.1독립선언서‘를 장석윤(張錫潤,1904~2004)이 낭독하고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한 뒤 이승만의 만세3창으로 막을 내린다. ([한인자유대회 회의록] 재미한민족연합회, 1942) 
    개회사를 비롯, 여러번 발언한 이승만 연설의 주요 대목을 보자.

    ★우리는 1919년 혁명을 엄숙하게 기념하고, 독립선언을 재확인하고, 지난 23년간 우리 가슴에 살아있는 자유를 찾기 위해 모였습니다. 압제자는 자유를 구속할 수 있을뿐, 자유를 말살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오늘 대회의 목적은 미국정부에게 23년간 존속해온 우리의 정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최후의 심판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고문당한 애국자들이 말합니다. 일본은 인류의 적입니다. 
    ★한국인들이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되어 아무런 해결방안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일본이 지어낸 모함이요 거짓선전입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거짓의 뿌리를 뽑아버립시다.
    ★지금 애쓰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당연히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오도된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맙시다. 영국 처칠의 말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벌써부터 처칠을 싫어했다. 영국 식민지 해방을 늘 반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의 독립을 회복시켜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하며,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동지 여러분!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등하는 여론의 물결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재산과 피와 땀을 희생해서라도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는 이 위대한 나라 미국의 여론입니다. 그것은 홍수와 같은 자유의 물결입니다. 
    한국인의 슬픔의 눈물은 끝났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물결은 해안에 밀려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승리의 해안으로!

    ▶소련에도 무기를 제공하는 ’무기 대여법‘에 따라 미국정부가 한인부대도 무장시켜주면 한반도내 일본군 진지와 보급로를 폭파할 것이며, 그러려면 임시정부의 승인을 빨리 해달라고 외치는 이승만의 옷 주머니에는 철도 터널등 폭파지점을 표시해둔 한반도 지도가 들어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