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 재건축...전사자 이름 모두 각인화강암 재질에 미군 3만6634명, 한국군 카투사 7174명 이름 순서대로 새겨
  • ▲ 리처드 W.딘 2세.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의 부 이사장ⓒ곽수연 기자
    ▲ 리처드 W.딘 2세.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의 부 이사장ⓒ곽수연 기자
    "한 번도 알지 못한 나라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부름에 응답한 이 나라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바닥에 새겨진 문구다. 

    70여년 전, 미국 젊은이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목숨과 청춘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이는 과연 쉬운 결정이었을까?

    최근 러시아 동원령 사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듯. 지난달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만 명의 예비군을 소집한다는 부분적 동원령을 선포했다. 이에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다. 동원령 반대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고, 이로 인해 시위자들은 감옥에 끌려갔다.

    젊은 러시아 남성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이웃 국가로 도망쳤다. 심지어 '팔 부러뜨리는 법'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 랭킹에 올랐다. 

    또, 튀르기예행 비행기는 조기 매진됐다. 다른 이웃 국가로 가는 비행기편도 수요 폭증으로 인해 값이 평상시보다 몇 배 이상 뛰어올랐다.

    아울러 조지아로 가는 러시아 차량 행렬은 길게 늘어섰는데, 이 차량 행렬의 위성사진은 각 해외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도배했다. 여기에 러시아 래퍼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에 어긋난다며 투신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목숨과 청춘을 바치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는 러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한국에 동원령이 내려진다면, 똑같은 현상이 한국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72년 전 6.25 전쟁을 위해 큰 용기와 결단을 내려준 당시 미국 젊은 용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리처드 딘 한국전 참전용사추모재단(KWVMF) 부 이사장도 한국이 감사해야 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외할아버지-아버지-삼촌 모두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다.

    특히 외할아버지 경우, 러시아 당국에 끌려가 10일 동안 고문을 당한 뒤, 북한에 넘겨져 돌팔매 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리처드 딘 부이사장은 평생 외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과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미군 참전용사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추모의 벽' 건립을 결심했다. 그는 '추모의 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27일 추모의 벽은 마침내 건립됐다. 검은 화강암 재질의 추모의 벽에 미군 3만6634명과 한국군 카투사 7174명 등 총 4만3808명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새겨졌다.

    미국 내 참전용사 기념시설 가운데 미 국적이 아닌 한국군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다.

    이에 <뉴데일리>는 지난달 23일 대한민국 해양연맹의 초청으로 방한한 리처드 딘 부이사장을 만나 ▲그의 할아버지-아버지 한국전 참전 ▲추모의 벽 ▲한미동맹 전망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리처드 W.딘 2세입니다.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의 부 이사장입니다. 또,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 세워진 '추모의벽'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설 엔지니어입니다."

    -외할아버지 한국전 참전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저희 외할아버지 존 R. 러벨 미공군 대령은 미 공군기지 본부 워싱턴 D.C 펜타곤에 배치됐습니다. 그러다 요코다(주일 미 공군기지)에 일시 주둔해, 중국 상공을 지나가는 정찰비행기를 감독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미 공군 정찰폭격기 RB45-C를 타고 북·중 국경인 압록강 지대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핵 능력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러시아 비행기에 의해 피격 당했습니다.

    이후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중공군은 할아버지를 러시아 KGB에게 넘겼습니다. KGB는 할아버지를 10일 동안 심문한 뒤, 북한군에 넘겼습니다.

    북한군은 할아버지 목에 '저는 당신의 도시를 폭격한 사람입니다'라는 팻말을 달고 마을을 돌아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마을 끝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돌팔매 당해 사망했습니다. 1992년 저희 어머니가 고용한 사설탐정이 러시아 KGB 기록을 입수해 알려준 내용입니다."

    -할아버지 유해는 찾았나요?

    "할아버지는 유해는 아직도 실종 상태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같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군 유해가 7850구입니다. 통계를 내자면, 아직까지 미국에 송환되지 못한 유해는 전체 전사자의 5분의 1입니다. 유해는 아마 한반도 내 또는 국경지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할아버지 유해는 북한 어딘 가에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시다시피, 미국과 북한 사이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북한이 미군 유해 송환작업을 허용해주지 않아 (유해를 못 찾고 있습니다)."

    -미국 당국은 유해송환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하나요?

    "DPAA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DPAA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입니다. 저희 가족은 DPAA가 주최하는 연례행사에 참석합니다. 

    DPAA는 유해발굴에 사용되는 기술 업데이트를 보고해줍니다. 또, 거기서 저희 가족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전사자 가족들을 만나 유해 송환 관련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북 관계가 고조된 상황에서, 저희 할아버지 유해를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모든 전사자의 가족들은 참전용사의 유해를 미국으로 송환해 무덤에 묻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
  • ▲ 6.25.한국전쟁에서 싸운 미군 동상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
    ▲ 6.25.한국전쟁에서 싸운 미군 동상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
    -아버지의 한국전 참전 스토리도 소개해주세요.

    "한국전 참전 첫 해, 아버지는 USS포터라고 불리우는 미사일 구축함에 승선해 터널을 지나가는 기차를 격추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아버지는 야간에 기차를 격추했던 임무는 흥미로웠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다음 해, 아버지는 남북 국경 수역지대에서 제7대 함대소속으로 근무했습니다."

    -추모의 벽이 설립된 소감을 말해주세요.

    '추모의 벽' 프로젝트를 3년 동안 감독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이 저에게 와서 "행방불명된 전사자들의 이름은 어디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저는 "워싱턴 D.C 추모재단이나 베트남전 추모재단에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틀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10년 뒤, 추모의 벽을 처음 세운 설계자들과 한국전참전추모재단 전 이사장을 만나 새로운 '추모의 벽'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원래 추모의 벽도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다만, 전사자들을 기념하지는 못했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추모의 벽'은 모든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립니다. 전사자들의 가족들도 와서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시면 됩니다. '추모의 벽'만이 유일하게 (유해미송환된 모든)전사자들의 이름을 다 새겼습니다. 다른 추모기념물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북한 도발이 계속되는데 2번째 한국전쟁이 터질까요?

    "두 번째 한국전쟁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렇게 안 되길 희망합니다. 휴전상태가, 평화협정으로 이어져, 남-북한이 통일해서 조화를 이루며 사이좋게 지내길 바랍니다. 전 세계는 슬픔과 혼돈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한미동맹은 계속 유지될까요?

    "이번 방한 중 한미동맹재단이 주최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전-현직 미국-한국 군 사령관들을 만났습니다. 컨퍼런스에 한국 국방장관,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왔습니다. 매년 한미동맹이 굳건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중요 우방국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알고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6.25 전쟁에서 원조를 받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성장한 것에 놀라는 동시에 자랑스러워 한다. 이는 또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말해줍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