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납치 후 50명 강제억류 …39명만 부분 송환11명 가족 고통 속에 살아 …"정권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 없어"
  • ▲ 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가족모임 대표가 아버지와 어린시절 찍은 사진을 들고있다ⓒ곽수연 기자
    ▲ 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가족모임 대표가 아버지와 어린시절 찍은 사진을 들고있다ⓒ곽수연 기자
    1969년 12월 11일, 50명의 가정이 부지불식간에 풍비박산 났다. 강릉에서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기가 납치되면서 50명이 북한에 강제 억류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듬해 전원 송환을 약속했지만 1970년 2월 14일 39명만 부분 송환했다.

    미귀환자 11명의 가족들은 1969년 납치사건으로 인한 고통에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다. 특히 미귀환자 중 한 명인 황원의 아내 양석례 씨는 남편의 납북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스트레스 외상 증후군'과 '편집성 인격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는 백주대낮에 납치된 남편에 이어 자식들마저 어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경계했다. 양석례 씨는 아들 황인철 씨가 등산이나 수영 등 기본적인 일상 활동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자제 시켰다. 또, 불현듯 위험하다고 판단이 들면, 학교로 찾아가 아들을 강제 하교 시켰다고 한다.

    이같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생을 보냈지만 그는 단 하루도 남편을 잊은 적이 없다. 양석례 씨는 늘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성이고,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을 52년째 그리워하던 양 씨는 지난해 11월 사망했다. 북한 때문에 생이별하게 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된 것이다.

    <뉴데일리>는 1969년 KAL 납치사건 피해가족들을 대표해 국제사회에 북한의 만행과 미귀환자 송환 촉구를 위해 목소리 내어온 황인철 씨를 만나 사건의 내막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 ▲ 1969년 KAL기 납치사태 미귀환자 황원ⓒ곽수연 기자
    ▲ 1969년 KAL기 납치사태 미귀환자 황원ⓒ곽수연 기자
    1. 아버지가 1969년 KAL기 납치사건으로 납북되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가.

    "내 나이 두 살 때였다. 당시 아버지가 강릉 MBC 피디였다. 출장 가기 위해 1969년 12월 11일, 정오 12시 25분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 후 10분 만에 북한 간첩에 의해서 대관령 상공에서 하이잭킹(운행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 당한 사건이다. 당시 납치된 사람들은 승무원 4명, 승객 47명이다. 간첩 1명을 제외하고 총 50명이다.

    북한은 1970년 2월 4일 '전원 송환'을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만 부분 송환했다. 부분 송환된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를 비롯해 나머지분들은 북한에 강제 억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당국에게 11명을 돌려보내라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요구했다. 그 요구에 대해, 북한은 남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자의적 의사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ICRC가 북한당국에게, 요구한 것이, 너희들(북한) 주장이 그렇다면, 제3국과 제3자에 의해 '자유의사'만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은 답변을 거절했고,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2. 귀환한 39명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납북자들한테 약물을 주사하고, 전기 고문하고 심지어 세뇌교육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39명의 증언에 따르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고문과 약물투여에 의하여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굉장한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3. 이후 발생한 오토 웜비어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있을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났다. 오토 웜비어 어머니도 만났다.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는 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끔찍했다."

    4. 2018년 8월 통일부 등 정부가 납부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는데, 인권위원회가 2021년 1월 이를 다루기 적절치 않다며 각하했다고 들었다.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2010년 아버지를 대신해서 인권 침해당했다고 접수했을 때는 대한민국 행정력이 북한 지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인권위가 다루기 적절치 않다며 각하했다. 

    2016년에는 내가 노력해서 한국 정부에게 나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진정한 내용에 대해서 '고도의 정치적·외교적 사안'이므로 국가인권위원회서 다루기 적절치 않다며 각하했다."

    5. 당시 심정은 어땠나?

    "인권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침해이자 인권 폭력이다. 헌법으로 보장된 나의 기본권이 무참하게 (짓밟혔다). 인권침해다."

    6. 지난해 6월 인권위가 내린 각하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들었는데 현재 진행상황은?

    "행정소송 1심에서 각하되었다. 항소장을 냈다."

    7. 아버지 송환을 위해 활동하신 지 몇 년 되셨나? 

    "2001년부터 활동했으니 거의 21년이다."

    8. 아직까지 납북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분쟁이나 전쟁 발발 지역에서 첫 번째로 상대국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가족(납북자 가족들)을 우선적으로 만나게 해줘야 한다. 그럼으로써 상대국의 진정성을 확인한 후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로 인해서 (남북관계)를 진행하다 보니 엎치락뒤치락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남북간의 특수관계로, 때로는 적대관계, 때로는 화합 관계를 가지는 이벤트를 연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우리 가족(납북자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통일의 시작점이라는 (인식)을 갖고, 즉 인도주의적 사항을 해결하고 그 다음으로 경제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채 납북자 가족들은 도외시하고, 이들의 아픔을 뒤로한 채,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진행하다 보니 남북관계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 지난해 1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 피해자 송환 요구 의향이 있는지 묻는 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혔는데 보냈나? 양측 후보로부터 온 대답은 무엇인가?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두 분으로부터 다 답변을 받지 못했다. 

    10. 이에 대한 견해? 심정?

    "가장 큰 문제는 통일부의 기본 정책은 바뀌지 않는 데다 정권이 바뀌면서 말만 바뀐다.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아예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우파정권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말로서는 뭐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것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북한이 납치문제를 부인하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해결방법을 만들면 우리 가족은 만나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11.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하고 싶은 말.

    "아버지가 건강하면 같이 목욕하고 싶다. 아버지랑 내가 어디가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다."

    12. 마지막 하고 싶은 말

    "항공기 납치사건은 국제사회가 용서할 수 없는 국제범죄이다. 그 누구도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자기 의사에 반해 어느 지역에 강제 억류돼 가족들을 못 만나는 끔찍한 범죄에 동조하거나, 휩쓸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제적) 협약에 따라 아버지는 당당히 돌아오셔야 한다. 국제적 원칙과 질서에 따라 (반드시) 송환되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한국 정부에게도 마찬가지로 호소하겠다. 계속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