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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길 칼럼] 오늘 7.4의 역사 - 미국과 한국야당의 '무서운 음모'

입력 2022-07-04 16:47 수정 2022-07-04 16:47

▲ 1952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 밤, 부산 피난 국회에서 이승만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의원들이 거수 표결하는 장면.(자료사진)

7.4 독립기념일–피난 수도 부산 '정치파동 드라마'

6.25전쟁이 한창인 1952년 여름 74일 저녁, 피난수도 부산 대청동 소재 미국 대사관에서는 독립 176주년 축하파티가 열렸다. 그 시간, 이웃 피난 국회에서는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안을 막으려 장기 농성을 벌이는 야당 민국당이 미국의 결정적인 신호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조바심치던 사무총장 조병옥은 해가 지기도 전에 미국 대사관으로 달렸다.

미국은 이승만을 포기했느냐?“ 조병옥의 은밀한 재촉에 무초 대사는 불필요한 추측은 하지 말라며 뜻밖에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병옥은 낙담한 얼굴이 되어 떠났다. 이어서 나타난 신익희 국회의장과 이종찬 육참총장도 미국의 결단을 조심스레 타진하자 라이트너 대리대사가 나섰다. ”미국 정부는 더 이상 한국국회를 지지할 태세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라이트너 회고 인터뷰, 1973)

이것은 미국과 야당의 공모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깨는 장면이다.

공모라 함은 그해 국회간선제로 선출하는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을 제거하자는 암암리 약조아래 추진하던 비밀작전을 말한다.

? 미국은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장애물 이승만을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국군을 동원, 가택연금 또는 국외추방하고, 미국 말을 잘 듣는 상냥한 인물장면(張勉)으로 대통령을 바꾸려 하였다. 한국육군 일부도 쿠데타 하겠다며 미국이 도와달라 했다.

야당 민국당(민주당+국민당)1948년 건국헌법을 대통령중심제로 양보한 결과 집권에 실패, 이승만체제에 끌려가자 후회막급, 내각제 개헌과 이승만 제거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이익공동체미국과 손을 잡았다. 배가 맞은 양측은 그렇게 529일 국회를 전격소집 간선제 쿠데타를 서둘렀는데, 이를 알게된 이승만이 선제공격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소집을 막은후, 직선제 개헌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난처해진 미국은 이승만에 압력을 가하며 비밀회의를 거듭, ”이승만을 대체할 전쟁지도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이승만제거를 포기함으써 민국당은 닭 쫓던 개처럼 주저앉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70년전 오늘 밤, 미대사관의 축하파티가 끝날 무렵 국회에서는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안 심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여 기립투표를 실시, 기권3명을 제외한 전원찬성으로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직선제 헌법이 통과된다. 야당요구도 수렴한 발췌개헌‘--이른바 부산 정치파동‘ 40일만이다.

미국의 힘을 빌어 자기나라 대통령을 축출하려던 야당은 미국이 손을 떼자 자포자기 찬성할 수 밖에 없었다. 민심의 직선제요구 압력이 너무나 거셌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도 지가 대통령하려고 폭거로 개헌한 독재자 이승만이라 매도하고 있다. 직선제가 독재인가?

78세 이승만은 말했다. ”국회 간선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 강대국 사대주의 지배와 공산당 침투에 무방비이므로, 헌법 제1조에 따라 주권재민을 실현하였노라. 내 임기중에 이것만은 반드시 시행하려 했는데 여한이 없게 되었다. 이제야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공화주의를 키우고 지켜가야 할 것인데, 정치권이 대오각성 단결 협력하기 바란다.“

마침내 85, 5천년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은 첫 직선제 대통령 이승만이 취임한다.

대통령 직선제도 이승만이 만들었다. 박정희 유신 선포로 변질되었다가 전두환의 6.29선언에 의해 직선제 부활, 운동권에선 이걸 민주화라는데 무식하고 틀린 선동이다. 민주화는 대한민국 건국 자체가 '노예해방' 민주화의 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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