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진보파'이길 원한다면 '586 전체주의'에 저항해야
  •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다 좌절한 사유에 대해서는 필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민주당의 그런 결정에 대한 박지현 씨의 논평은 충분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그는 말했다.

    “당은 다원주의에 기반한 대중 정치를 포기하고 폭력적 팬덤 정치로 쪼그라드는 길을 선택했다.”

    "지금부터 청년, 당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국민과 함께 '민주당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돌입하겠다.”  

    박지현이 어떤 캐릭터인지, 필자는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던진 논점 자체는 보편적인 관심 사항이 될 만하다. 더불어민주당, 진보·좌파, 친(親) 이재명·반(反) 이재명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보수·우파, 대한민국에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왜?

    그의 논점은 “한국 좌파, 어디로 갈 것인가?”의 근본적인 물음이기 때문이고, 좌파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 전체가 큰 영향을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박지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 진보·좌파는,  

    1) 이념의 독재(오직 하나의 사상만 허용)로 갈 것인가, 이념적 다원주의(복수의 사상을 허용)로 갈 것인가?

    2) 계급 독재(오직 노동자, 농민, 민중 권력만 허용)로 갈 것인가, 여러 다른 계급의 공존(자산계급, 중산층도 허용)으로 갈 것인가?

    3) 혁명 독재(오직 하나의 정당만 허용)로 갈 것인가, 당내 민주주의와 당 밖 복수정당제로 갈 것인가?

    요약하면, 전체주의 일당독재 좌익으로 갈 것인가, 자유 체제하의 진보정당으로 갈 것인가의 논쟁이다.

    그는 ‘다원주의에 기반한 대중 정치’ ‘폭력적 팬덤 정치’라는, 별 ‘대수롭지 않은 표현’을 구사했지만, 그 말 뒤에는 ”전체주의적·획일주의적·독재적 좌익으로 갈 것인가, 민주적·다원적 진보로 갈 것인가?“를 둘러싼 범(汎)좌파 내부의 ‘100년 논쟁’을 재연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장차 어찌 될지는 몰라도, 문제의식 자체는 괜찮다.

    6.25 후 한국 사회 운동은 1950년대~1960년대~1970년대~198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전체주의 아닌 흐름’이 운동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는 갑자기 주사파, 마르크스·레닌파가 운동의 리더십을 겨뤘다. 그러다 주사파로 운동권이 완전히 넘어갔다.  

    어느 날 그들은 유인물에서 권위주의 반대 정도가 아니라 ‘자유주의 반대, 수정주의 반대’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군부 통치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민주적 진보, 박지현이 말하는 ‘다원주의에 기반한 대중 정치’도 적(敵)으로 치겠다는 것이다. 기가 찰 일이다. 민주화 운동이 극좌에 의해 하이재크(공중납치) 당한 시점이었다.   

    그 후 오늘까지도 한국 대중사회는 물론 대졸(大卒) 이상 층에서조차 진보·좌파 하면 그건 곧 극좌 마르크스주의파나 주사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예 통념화됐다. 참으로 어이 없는 무지몽매다. 세상에 이렇게 단무지(단순 무지)일 수가!  

    운동이 극좌로 넘어간 후로는 대학 강단, 철학·역사학·사회과학, 대학생 사회, 교육계, 노동계, 문화계, 대중 연예계, 젠더 운동 등 정치·사회·문화 모든 부문이 완전히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보수·우파는 고사하고 민주적 좌파, 다원주의에 기반한 대중 정치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

    세상이 이렇게 역(逆)의 독재로 갈 수가!

    이러려고 민주화 운동 했나?

    운동권 세상은 이렇게 독재로만 흐른 게 아니라 집권 후로는 부정, 부패, 타락, 성추행 꾼들 세상으로도 갔다. 정치 이전에 도덕적 분노로 시작한 민주화 운동이, 부도덕한 좌익 도둑 정치(kleptocracy)로 변질한 꼴이다.  

    이건 사전적 의미의 좌파도, 진보도, 무엇도 아니다. 그저 타락한 권력일 뿐이다. 박지현이 속한 젊은 세대라면 어떻게 이런 586을 민주화 선배, 진보 선배, 도덕적 선배로 존경할 수 있을 것인가?

    586에 세뇌당하지 않았거나 당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선생 세 사람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

    밀라다 호라코바(Milada Horáková).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반대한 민주적 좌파의 전형이다. 그의 소설 <1984>를 읽어보기 바란다.

    밀로반 질라스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 티토 밑에서 혁명운동을 하다가 부통령까지 됐다. 훗날 스탈린 전체주의는 물론 티토 공산당 독재, 마르크스·레닌주의에도 저항했다. 그의 저서는 많지만, <스탈린과의 대화>는 문학적 작품성도 화려하다.

    밀라다 호라코바 여사는 나치에 저항하다가 수용소에 갇혔다. 2차대전 후 체코 정계 지도자가 됐다. 공산당 통일전선에 가담하지 않고 적화에 저항했다. 그녀는 체포돼 엉터리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그녀의 삶 자체가 자유혼의 전형이다.  

    그렇다. 진정한 자유인, 진정한 진보파이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나치에도, 볼세비키에도 저항해야 옳다.  

    젊은 지성, 586 전체주의에 저항하라.

    저들은 진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