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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공조장치 기술자가 남파 간첩… 독가스로 몰살시킬 수도 있었다"

北 정찰총국 대좌 김국성 “靑 근무 박명수, 1994년 귀환 뒤 공화국 영웅 대접” 폭로김영철 "천안함 폭침은 김정은 지시" 밝혀… 김국성 "여간첩 김남희, 재남파되기도"

입력 2021-12-14 15:58 수정 2021-12-14 16:48

▲ 지난 10월 영국 BBC와 인터뷰 당시 김국성 씨. ⓒ英BBC 보도화면 캡쳐.

지난 10월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에 남파 간첩이 근무했다”고 주장했던 김국성 전 북한 정찰총국 대좌(대령과 준장 사이 계급)가 “그 간첩은 청와대 공기조절장치 기술자였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이 마음만 먹었다면 간첩을 시켜 공조장치에 화학무기를 흘려 넣어 청와대 주요 관계자를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전직 정찰총국 대좌 “YS 때 청와대 근무했던 간첩 이름은 박명수”

김씨는 지난 10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초반 청와대에 간첩이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정보원이 나서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한 바 있다. 

김씨는 이와 관련해 최근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관련 내용을 더욱 상세히 털어놨다. 김씨는 정찰총국 근무 당시 5국장이었다. 계급은 대좌였다.

“북한 간첩의 청와대 근무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한 김씨는 그 남파 간첩의 이름이 ‘박명수’라고 밝혔다. ‘박명수’는 1976년 처음 남파하기 시작한 부부 공작조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1994년 북한으로 복귀, 대남공작용 자료를 관리하는 정찰총국 314연락소 특수과(10과)에서 일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BBC 인터뷰에서 북한 간첩이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고 하니까 다들 넥타이 매고 일하는 비서관이나 행정관만 생각하더라”고 지적한 김씨는 “하지만 박명수는 기술자, 그 중에서도 공조 계통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처럼 거대한 시설물의 공조 시스템 담당 기술자는 건물 구조를 다 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박명수가 여기서 근무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박명수 때문에 북한이 청와대를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공조 시스템을 모두 파악한 북한이 남파 간첩을 시켜 독가스(화학무기)를 흘렸다면 청와대 직원 모두 몰살 시킬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공조 기술자로 일하면서 청와대 시설물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한 뒤 귀환한 박명수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평양 문수동의 아파트도 받았다고 김씨는 전했다. 평양 문수동은 북한 주재 외교 공관들이 밀집한 곳으로, 노동당 고위 간부 전용으로 알려진 남산병원도 있다.

“노동당 35호실서 2013년 9월 다시 남파한 ‘김남희’… 당시 50세”

김씨는 또한 체포되었는지 확실치 않은 남파 간첩과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조선노동당 35호실(북한 정찰총국의 전신)이 보낸 여간첩이 10년 동안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공작활동을 벌인 뒤 2013년 9월 북한으로 복귀, 20일 동안 재교육을 받고 다시 남파됐다”는 것이다.

이 여간첩의 이름은 ‘김남희’로, 김일성종합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뒤 김정일정치군사대학(간첩 양성기관)을 수료했다. ‘김남희’는 평양 동북리초대소에서 사흘간 묵으며 혁명사상, 사격술 등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이때 김일성종합대에 다니던 아들과 상봉했다. 당시 담당 지도원은 정찰총국 5국 부과장 주철문이었다고 김씨는 밝혔다.

김남희가 북한에서 재교육을 받고 다시 남파된 2013년 당시 나이는 50세였다. 김씨는 “이 사실은 2013년 9월 당시 정찰총국 5국 국장이던 조일우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업무차 귀국했을 때 친분이 있던 조일우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에 망명한 직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남희의 남파 사실을 국정원에 알렸지만, 이후 국정원이 체포했는지는 듣지 못했다”며 “잡히지 않았다면 지금도 남한 내에서 활동 중일 가능성이 100%”라고 주장했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은이 직접 지시… 장성택 몰락 때문에 탈북했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냐”는 시사저널 질문에 김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이 터지고 두 달 뒤인 2010년 5월, 김씨는 평양 만경대구역 특각(호텔)에서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과 조일우 정찰총국 5국장 등을 만났다. 여기서 김영철이 “대장 동지 지시로 천안함 작전이 대성공했다”며 “대장 동지의 결단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대장 동지’라는 호칭은 김정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천안함 폭침 도발은 김정은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김영철은 또 다른 1호 지시(최고지도자의 직접 지시를 의미)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도 꼭 성공시키자는 결의도 했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김씨는 탈북하게 된 결정적 동기가 장성택의 몰락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성택과 30년 지기로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는데 그가 처단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절감했다”며 “장성택 인맥으로 간주되면 평양으로 돌아가도 혈육과 친지들이 다칠 것이고,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김씨는 돌아봤다.

김씨는 2014년 3월 탈북했다. 당시 근무하던 중국에서 부인과 딸을 데리고 왔다. 장성택이 처형당한 지 4개월 뒤다. 김씨는 김책공대 전자공학부를 졸업한 뒤 인민경제대학·김일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고, 곧 노동당 35호실과 정찰총국, 당 작전부, 대외연락부에서 근무했다. 탈북한 뒤에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근무하다 2019년 퇴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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